전 시 명: 유용선 기획초대전 "Organic Ingredients"
전시기간: 20197년 7월 26일 ~ 8월 20일
전시 오프닝: 2019년 7월 26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작가노트

Organic Ingredients

어느 늦은 아침 나는 느릿느릿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능숙하게 재료들을 꺼낸다. 어제 밤 잠이 들기 전에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무얼 해먹을지 미리 생각해 놓는 것이 습관이 됐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몇몇 재료가 많이 상했거나 없었다.
영국의 유명 요리 방송을 진행하던 셰프 제이미 올리버는 언제나 준비한 재료가 다 떨어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뒤뜰로 뛰어나가 자신이 기르는 채소 등을 따곤 했다. 물론 방송의 성격상 어느 정도 연출된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뒤뜰에서 갓 따온 로즈마리를 경쾌하게 다져 고기를 재우던 그의 손놀림은 가끔 이렇게 재료가 없어 난감한 상황일 때 생각나곤 한다.


자취요리의 특징은 그냥 있는 대로 대충대충 해먹는다는데 있다. 물론 어떤 재료가 빠짐으로써 맛에 약간의 빈 공간이 생길 수도 있지만 살기 위해 먹는 음식에 상쾌한 생파의 향이나 생강의 은은한 끝 맛은 크게 중요치 않으므로 과감히 생략한다. 그런 특징 때문에 자취 요리는 큰 기대가 없는것이 보통이며 어쩌다 먹을 만 하면 쉽게 감동을 받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백종원 레시피의 특징도 그러한데 가령 집에 두반장이나 굴소스가 없을 떄 고추장 된장, 간장 설탕 등으로 그것들의 맛을 비슷하게 흉내를 낸다. 두반장 대신 고추장과 된장을 넣어 끓인 마파두부가 언젠가 먹어본 마파두부 맛이 날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요즘 사람들로 하여금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하게 하는 것 같다. 물론 우리집에는 두반장, 굴소스를 비롯, 해선장, 노두유, 피쉬소스, 케챂 마나스등 보통 자취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 소스들이 많이 있다. 그건 내가 요리에 취미가 있기 때문인데, 평소 먹는 걸 좋아하고 어디선가 맛있게 먹었던 요리를 비슷하게 만들어 주변사람들과 즐기는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요리를 대접할 때의 뿌듯함과 내 요리를 안주 삼아 술 한잔 기울이며 좋은 시간을 보내면 평소 그림을 그리며 쌓인 고독함과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풀어주곤 한다. 맛있는 요리는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어떤 재료로 조리하는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도 하다. 혹자는 간결한 조리법으로 싱싱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것이 맛있는 요리의 기본 조건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갈비찜이나 매운탕, 김치찜 등 강한 향신료와 재료를 써서 재료 본연의 맛을 바꾸는 한국의 조리법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도저히 받아 드릴 수가 없지만 간단하게 삶아낸 새조개의 담백한 맛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싱싱하고 맛있어 보이는 재료들을 보면 요리를 잔뜩 해서 사람들을 대접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때면 그 재료 앞에 우두커니 서서 어떻게 요리 할지를 골똘이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한다.


나는 가끔 내 주변 사람들을 어떤 요리를 좋아했는지 어떤 재료를 선호하는지로 기억한다.
누구는 생선류를 안 먹고 누구는 삶은 고기를 안 먹고, 그런것들을 기억해두면 최대한 모두가 만족하는 요리를 만들 수도 있어 요긴하다.


이렇듯 재료라는 주제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요리를 주제로 하는 작업을 많이 하는 요즘에는 그저 표현의 도구가 아닌 내 삶에 기억되는 요리에 대해 더 깊이 파고 들수록 요리의 원래 모습이었을 재료라는 주제에 매료되어 더 단순하게, 원초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싱싱하고 맛있어 보이는 재료를 봤을 때의 나의 설렘, 그것들을 요리 할 마음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긴 내 모습은 어쩌면 내 삶에 자리잡은 내 최고의 취미인 요리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라는 결론이 내려졌고 그것들을 표현해보았다. 우리 동네인 연희동에서 제일 비싼 ‘사러가 마트’에서도 제일 비싼 ‘ORGANIC' 재료들을 맘껏 쓰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냉장고에 원하는 재료가 없던 그 날 나는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짜장라면 두 봉지를 사서 끓여 먹었다. 그날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어느 계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짜장라면 두 봉지를 성의 없이 끓여 입에 우겨 넣다가 금방 맛에 질려 다 먹지 않고 버렸다는 것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