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박이원 기획초대전 "Broken Narrative"
전시기간: 2016년 9월 21일 ~ 10월 11일
전시 오프닝: 2016년 9월 21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모호하고 시적인 혼합, 불안에 대한 이야기


사실, 우리가 인간으로 살면서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당연하면서도 상당히 존재론적인 질문. 왜 아침이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하루를 살아야 하는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왜 여전히 나이며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나 또한, 왜 사람들을 어제와 동일시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질문 자체가 의미없어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이는 자연의 이치라고 잘라서 말한다고 해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그런 질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나 당연한 현상 이면에 거대한 음모나 우리가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한 키워드, 혹은 코드가 숨겨져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낯설어 지는 순간 밝혀지는 비밀들.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은 신, 이성, 기억, 물질과 정신, 등등 다양한 개념들로 이 비밀을 설명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프로그래밍한 전체를 꿰뚫고 있는 키워드인 듯 말이다.


박이원 작가는 모호하고 시적인 작품을 통해 자신의 경험 뿐 아니라 우리가 겪는 일상을 낯설게 만든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도형화된 조형언어, 신체의 일부분, 애매하게 합성된 혼합물들, 황당하게 버려진듯한 여백 등 절대 조화되지 않을 것 같은 파편들로 자신의 기억들을 늘어놓았다가 정리했다가 다시 늘어 놓는 것을 반복한다. 이는 일종의 주술적인 제의와도 같고 문자가 아니라 시각적 조형언어로 써 놓은 한편의 시 같다. 작가 역시 자신의 작업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기복과도 같다고 이야기 한다. 어쩌면 그의 작품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낱낱이 토해 냈을때 오는 카타르시스의 결과같기도 하다.


작가의 파편으로 일관되는 사고의 흐름은 결국 상처에 대한 이야기와 치유의 과정이고 결과다. 삶은 잊을 수 있는 상처와 절대 잊혀지지 않는 상처, 이 두가지의 변주다. 즉, 모든 것이 상처에서 시작된다. 상처는 나을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내가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상처를 전제하지 않으면 그 어떤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다. 관계는 늘 둘 중 어느 하나는 자기의 욕망을 포기하거나 채우는 것이다. 포기한 것도 상처고 얻은 것도 상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박이원 작가의 조형언어의 특이한 점은 그것이 반복된다는 것과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 그리고 그 둘이 혼합되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일상에서 상처를 대하고 치유하는 작가만의 독특한 패턴인지도 모를일이다. 모든 상처가 시작되는 인간관계에서는 발, 뇌 등과 같은 신체가 파편화되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신체들은 도형화되고 컬러로 변화되어 등장한다. 이는 상처에 대한 작가의 극복을 의미하고 이제 그 둘이 혼합되어 표현되는 것은 극복을 넘어 상처 역시 내 삶의 일부분이였음에 대한 강한 긍정적 마인드를 풀어 놓은 듯 한 패턴이다. 이는 여느 제의가 갖는 형식처럼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제의식이고 형식일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개인의 상처를 집단의 상처, 즉 자신이 처한 집단에서 참혹한 사고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집단의 상처가 어떻게 개인의 상처로 전이 파생되는지를 이야기 한다. 이는 언제든 나 역시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되거나 잠정적인 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불안하고 불안정한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낯선 장면을 목격했을 때 찾아오는 다양한 감정들. 이를테면,

‘시각적 내러티브는 상징적 이미지를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어떤 오후 공원에서 검은 새를 처음 마주쳤을 때이거나 물에 반사된 햇살이 기괴한 모양을 만드는 순간일수도 있다. 그림에는 무언가로 변신한 사람이 등장한다. 집이 되기도 하고 물고기나 버려진 나뭇가지, 새가 되기도 한다. 그림에서 나는 지속적으로 다른 것이 되어있는 alter ego를 만들어낸다.’ (작가노트 중에서)

여하튼 작가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 즉 시각적 내러티브를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면서 이야기의 주체를 수시로 바꾸게 되면서 사실상 이야기의 틀은 깨지고 시각적 상징들만 남게 된다. 이러한 상징들이 연결된 것이 말 그대로 시각적 조형언어로 쓴 시가 된다. 이는 드로잉, 페인팅,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이어지고 표현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일상의 다양한 상징과 은유의 대상에 투영함으로써 사물을 의인화하거나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렇게 의인화되고 의미가 부여된 이미지들은 말그대로 작가의 불안정함과 불안함에 대처하는 원초적인 언어이며 또한 제의를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박이원 작가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불안함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증가시킨다. 다시말해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불안은 늘 우리를 집착하게 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집단에 안주하고 권력을 지향하는 것 역시 불안함에서 시작된다. 불안을 불안하다라는 수동적 입장이 아니라 불안 역시 삶의 일부부일 수 밖에 없다는 능동적인 입장을 통해 불안을 바라보고 수용하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작가의 시적 감성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 굳이 서술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이 작가가 제시한 상징들을 타고 흐르는대로 내 상상력을 띄워보내는 것으로부터 불안을 극복하는 무엇인가 새로운 메시지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