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최원석 기획초대전 "두개의 치유"
전시기간: 2016년 4월 22일 ~ 5월 10일
전시 오프닝: 2016년 4월 22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두개의 다큐 : 망각과 치유


첫번째 다큐 : 망각
2002년 선거 공약으로 시작된 행정수도 건설계획은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으로 2003년 여야합의 하에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2004년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 시행령을 공포, 시행하였다. 그해 8월 행정수도 건설 최종 입지를 연기, 공주 지역으로 결정하였다. 2005년 5월 이주 지역민들 보상을 위한 기본 조사를 착수하여 그해 12월 예정지역의 보상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2006년 1월1일 건설교통부 외청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출범하여 필요한 계획안 및 법제화를 실시하여 그해 12월 21일 ‘세종시’로 도시명칭을 확정하였다. 2009년 첫마을 건축공사를 착공한 가운데 보수성향의 시민단체들이 계획 폐지를 촉구하는 등 정운찬 국무총리의 비효율성 발언과 함께 급물살을 타던 세종시 건설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논쟁을 야기하던 세종시 건설 수정안에 대해 그해 11월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방침을 공식 표명함으로써 세종시는 중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이완구 충남도지사가 사퇴하면서 수정안에 대해 강력한 반발을 하였다.


그러나 2010년 1월 정부는 세종시 이전계획을 전면 백지화, 세종시 개념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전환한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여야간 심지어 여당 내부에서도 분열이 초래될 만큼 강력한 논쟁이 이어지며 결국 2010년 이렇게 난항을 겪던 세종시 수정안은 결국 2011년 6월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주민들의 첫 입주가 시작되었고, 주요 간선도로 일부가 개통되었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의 교육감, 시장, 국회의원이 선출되어 그해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였고, 9월 14일 총리실 이전을 시작으로 세종특별자치시는 우리나라 행정수도로서 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정치, 경제적 논리 지키기 싸움을 하는 동안 지역민들의 삶은 철저하게 그 논리 뒤편으로 밀려난다. 즉, 공공의 가치를 위한 개인이 희생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최원석 작가의 다큐멘터리는 수정안이 부결되었던 2011년, 바로 여기 망각의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두번째 다큐 : 치유
최원석은 사진의 원론적인 기능에 집중하는 작가다. 즉, 사실적인 기록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한다. 따라서 그는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담고있는 기록적인 공간 찾는다. 기록적인 공간이란 선택의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겠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객관적인 사연을 지닌 공간이어야 한다. 말인즉슨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록적인 공간에 대한 작가의 집착은 영국 활동 때 부터였다. 작가는 산업화가 지배적이었던 런던 변두리에 쓰임을 다한 광고판을 쫓았고, 다음엔 회색빛 도시를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하는 이동식 놀이공원인 카니발을 쫓으며 다큐멘터리했다.
작가는 카메라 뷰파인더를 날카롭게 벼리며 다양한 감정들이 공존하는 공간들을 찾았다. 도심 변두리에 덩그러니 버려진 광고판에는 여전히 화려했던 시절의 광고 흔적들이 쓸쓸하게 흔들리고 있고, 거대한 회색도시 한켠에 불빛을 밝히고 있는 카니발 역시 화려하다기 보다는 삐에로처럼 극한의 외로움을 스스로 달래고 있는 듯 하다. 2009년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는 세종특별자치시의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2011년 세종시에 집착하게 된다. 2011년 6월, 첫 주민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작가는 철거중인 지역, 건설중인 지역, 이미 건설된 지역이 동시에 공존하는 말그대로 기록적인 공간인 세종시를 면밀히 관찰했다.


2011년에서 2014년까지는 사라져가는 흔적들을 기록했다면 2014년부터는 남아있는 옛흔적들을 기록했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을 법한 이불, 한때 유행하던 꽃벽지, 철거의 흔적이 묻어나는 벽들이 초기의 기록이었다. 최근에 작가는 세종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기줄을 기록하고 있다. 건축인력들의 유흥가로 바뀐 연기지역이 그곳이다. 이미 새로이 건설된 세종시의 전기줄은 땅속으로 설치되었고 그 유흥가가 세종시에서 유일하게 전기줄이 노출되어 있는 지역이다. 옛 흔적이지만 그 마지막 쓰임을 다하고 있는 전기줄을 비추는 낯선 네온 불빛, 그리고 그 빛을 반사하는 전기줄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는 이별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철저하게 객관적인 기록이야말로 감정의 이입을 통한 치유의 매커니즘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개의 치유
망각과 치유는 어쩌면 우리의 감정 정화작용에 있어 같은 선상에 놓여있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최원석의 뷰파인더 역시 대상의 일차적인 의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상이 지니는 여러가지 스토리들이 의미를 찾게 되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그것은 작가의 눈과 정신세계가 일치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순간들에는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남겨진 것들의 기록까지 작가 특유의 감성과 기억들이 오버랩된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의 기록을 영상 편집용어인 “Cross-Fade” 즉, 사라지고 나타나는 영상들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편집기법에 비유했다. 정신적 상처는 망각, 사라짐으로부터 치유가 시작된다. 망각의 에너지는 시간이다. 물론, 그 상처의 흔적은 남아 그 기억이 떠오르면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프다. 따라서 그 아픔을 상쇄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축복과 용서의 감정으로 전환한다.


최원석의 다큐멘터리에는 바로 이러한 치유의 메커니즘이 담겨있다. 그의 뷰파인더 깊숙한 곳에는 인간애와 함께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달픔이 있다. 따라서 세종시는 작가의 이러한 성격에 너무나 잘 맞는 다큐멘터리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예전의 흔적들이 다 사라진 세종시가 그의 뷰파인더에서는 어떻게 보여질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치유를 위한 그만의 스토리는 계속될 것이다. 어차피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집합적인 에너지고 그것의 발현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그의 치유 메커니즘은 더욱 더 왕성해 질 듯 하다. 최원석의 세종시 초기의 기록은 대상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기후나 시간 등 자연 환경이 만들어내는 미장센을 찾는 작업이었다. 물론, 지금도 작가정신이라고 할 만큼 그 철저한 미장센을 찾는 작업은 바뀌지 않았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방법론은 많은 부분 감성적으로 충만하게 변화되었다. 따라서 그의 다큐멘터리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 그리고 작가 자신을 위한 두개의 치유가 공존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화려한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 아니다. 행복한 현재는 과거의 망각과 현재의 치유에서 비롯된다. 작가가 보여주었듯, 나와 우리의 동시적인 치유야말로 현재의 행복 그 자체일 것이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