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위영일 기획초대전 "Layers"
전시기간: 2016년 11월 25일 ~ 12월 17일
전시 오프닝: 2016년 11월 25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레이어, 중층구조와 신추상충동


우연성과 즉흥성, 예술 창작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아예 이 즉흥성과 우연의 효과만을 가지고 창작되는 작품이 있을만큼. 이는 예술의 범주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한다. 삶의 너무 진지한 이슈와 주제들을 보다 가볍고 희극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일상에서의 우연성과 즉흥성이다.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된다면 우리의 일상은 숨쉬기조차 힘들어 질 것이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 계획한대로 딱 맞아 떨어지는 일은 흔하지도 않지만. ‘Aleatorik’ 이 예술 창작에 있어서의 우연성과 즉흥성을 일컫는 말이다. 알레아토릭을 시스템으로 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우연성의 계획의 결과를 창작행위로 전환하는 프로젝트. 일명 알레아토릭 페인팅 프로젝트 (Aleatorik Painting Project)다. 위영일 작가의 2013년 개인전때 선보인 프로젝트다.

위영일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들은 누군가에게, 특히 관객들에게 어떠한 범주로 규정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회화가 작가의 심적 갈등 혹은 철학적 깨달음에 대한 메시지라면 그 메시지가 하나의 범주로 읽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들의 작업 태도에 대한 위영일 작가의 경고성 프로젝트일수도 있다. 그의 알레아토릭 페인팅의 메뉴얼을 보면 근 현대 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범주화 해 놓았다. 작품의 제작 방식인 세로열을 쫓아 주사위를 던지면 각각의 제작관련 항목별로 주사위 숫자와 같은 여섯개의 선택지가 나오게 된다. 말그대로 전혀 예측하지 못할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이른바 시스템 페인팅이 탄생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는 회화가 지니는 레이어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여섯개의 선택지에 따라 쌓이게 되는 레이어는 일종의 중층구조로서 그 구조에 따라 자연스럽게 추상으로의 회귀(?). 아니 추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충동이 생기게 된다. 일종의 신추상충동이다.


우리의 의식(생각)의 구조는 중층구조로 되어있다. 이러한 의식의 중층구조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보다 객관적이고 효과적인 지식의 습득이 이루어진다. 말그대로 의식의 중층구조는 의식을 이루고 있는 레이어들이 켜켜이 그 층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그 하나의 층들은 각각의 경험과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층을 옆면에서 봤을때는 다양한 층면으로 구성되어 보이지만 정면에서 봤을 때는 수없이 많은 경험과 기억이 한꺼번에 보여질 것이다. 마치 위영일 작가의 레이어 작품과 같이. 매우 추상적으로. 이와같은 레이어 작업을 통해 작가는 회화의 자기 반성과 함께 다양한 회화적 변주를 실험한다. 작가는 현대미술의 추상적 요소인 평면성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하고자 투명 아크릴판을 사용한다. 화면위의 물감이 지니는 물성 역시 그리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리는 행위와 물성을 최소화하여 순수한 평면성을 되찾는 것. 그것이 현대미술의 추상성의 발로였다. 그런 의미에서 위영일의 투명 아크릴은 현대미술이 풀어내고자 했던 평면성을 미리 확보한다, 그러나 투명아크릴 이면에 그려지는 이미지들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은 평면인가 아니면 그리는 행위에 의해 재현된 일반적인 페인팅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또한, 색이 있는 아크릴판들의 레이어는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일종의 조각인가. 아니면 평면성을 극대화한 색면 추상인가. 여러가지 질문들이 동시에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작가는 레이어들 즉, 중층구조를 통해 교묘하게 미술의 의미 자체를 비틀고 또한, 새로운 타입의 감정이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


우연과 즉흥적 규칙을 통한 알레아토릭 페인팅 프로젝트가 범주화되는 미술의 속성을 다양하게 분석해 냈었다면 이번 레이어 작업들은 회화와 관객의 관계성을 분석한다. 어떻게 봐야 하는가의 문제다. 결국 보는 것에 대한 문제는 관객이나 작가에게 정신적 활동을 강조한다. 관객과 작가간 추상성의 교류다. 작가의 레이어 작품은 측면은 조각적으로 구축되어 있고 정면은 추상성이 강한 회화로 구성된다. 또한 그 표면은 그 어떤 미니멀한 작품보다도 매끄럽고 일괄적이고 객관적인 평면이다. 이러한 구성 자체는 어떠한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초현실적 분위기. 일단 여기서 부터 우린 작가의 의도를 들여다보기 보다는 상상하게 된다.

작가 역시 이러한 구성을 통해 사실적인 표현이나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도 여러가지 회화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상상을 시작하게 된다. 무엇을 보고 그린다는 행위로부터 얻은 자유. 실제로 이러한 자유는 작가에게 다양성의 세계를 선사한다. 알레아토릭 페인팅에서는 찾기 힘든 일탈이다. 알레아토릭 페인팅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이미 만들어진 규칙을 연기자처럼 수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수학적 문제를 해결하듯이 회화의 본질을 분석했다. 그러나 그 다양한 범주의 규칙들을 레이어로 펼쳤다가 다시 하나로 묶어내면서 새로운 추상충동이 가능함을 발견했다. 이는 강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거나 지극히 객관화 시키는 기존의 추상작업이기 보다는 보다 객관적으로 작가와 관객들의 생각들을 이어주고 교류할 수 있음에 대한 가능성을 지닌 추상이다. 소통으로서 추상. 물질과 정신의 합일이 정신의 기억과 물질의 이미지의 만남이라면 위영일 작가의 레이어는 작가와 관객의 활발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경계다. 그의 레이어는 우리로 하여금 토론하고 분서하고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