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허수빈 기획초대전 "On / Off"
전시기간: 2015년 10월 30일 ~ 11월 8일
전시 오프닝: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불이 켜지면, 빛으로 기억되는 순간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 어렸을 적이라는 것 정도. 그래도 의사소통은 충분히 가능했던 나이라 기억은 선명하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기억에는 순차적인 전후 맥락이 명확하지 않다. 또래의 친척 아이들이 모여서 전등 스위치 위에 놓인 외할아버지의 손끝만을 바라보며 마냥 신기해 하던 기억.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툇마루 위에 걸린 백열전구의 필라멘트가 오렌지 빛으로 빛났었다. 그렇게 처음의 전등 빛은 흔들리는 남포등 대신 시고의 밤을 밝히던 깨끗하고 눈부시리만큼 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전히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모른다. 단지 불이 켜짐으로 당시의 공간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했었던 기억은 엊그제처럼 선명하다. ‘딸깍’ 소리와 함께 시공간의 개념은 사라지거나 다른 기억들과 섞이면서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전이된다.


허수빈 작가는 빛의 기억 또는 빛으로 기억되는 순간 그리고 그 기억을 품고 있는 공간을 그린다. 정확하게 연출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 하다. 아무런 기교없이 누구나 한번쯤 찍어봤을 법한 사진들이다. 그 사진에 말그대로 진짜 불이 켜지지 전까지는. 그리고 그 빛과 함께 작가의 기억들이 공유되기 전까지 그의 사진은 너무나 평범하게 우리의 일상을 담고 있다. 고즈넉하게 그의 평범한 일상을 바라보다 불이 켜지는 순간, ‘어디였더라’ 그 익숙한 공간의 기억들을 더듬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더 이상 물리적으로 우리를 구속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갔었던 파란 빛으로 가득한 수산시장의 수족관을 바라보며 고래처럼 바다를 상상해 봤던 기억. 골목 모퉁이를 돌아들며 떠오르던 그날 밤의 기억. 공장 안으로 새어드는 빛을 보며 아버지의 넉넉한 어깨가 떠올랐다면 억지일까. 허수빈의 사진에 불이 켜지면 낮이였던 장면이 순간 기억 속 그 밤의 장면으로 바뀐다. 이는 늘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던 일상의 장면이 서정과 감상의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지럽게 잔뜩 널려있던 공장의 기계들도 창문으로 빛이 새어들어오는 순간 각자의 기억속 기계들로 치환되면서 자신도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호출된다.


창을 열고 무심히 바라보던 앞집의 창문에도 뒷집 아파트 복도에도 불이 들어오면 순간 다양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몰래 엿보기 보다는 살짝 빗겨서면서 고단했을 그들의 하루를 상상해 본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상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호기심을 넘어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현재를 고민하게 한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과연 나는 그들과 함께 잘 살고 있는 걸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질문과 그들의 밤을 비추는 불빛과 함께 머리속을 차갑고 청명하게 비워본다.


오래된 삐삐는 과거로 부터 메시지를 전하고, 노래방의 네온은 소리에 반응하면서 반짝거린다. 거친 파도위로 내려앉는 햇빛은 여러가지 감정의 색으로 바뀐다. 허수빈 작가의 또 다른 기억의 장치들이다. 2층 창에서 무심코 내려다 본 동네 어귀에서 번쩍거리는 경찰차 불빛도 많은 생각들을 자극한다. 작가는 순간을 기록하는 정적인 사진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감상의 반전 뿐 아니라 사진의 현장감과 리얼리티를 공고히 했다. 빛이 온. 오프 되면서 허수빈의 풍경과 사물들은 단순한 풍경과 사물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사고속으로 침투한다. 빛을 머금은 사진의 기술적인 측면은 둘째치더라도 그 빛의 이미지가 던지는 메시지는 상당히 애달프다. 그렇게 빛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게 된다. 밤하늘의 별빛이 그랬고, 달빛이 그랬던 것 처럼.


작가에게 빛은 기억을 담고 다시 내보내는 일종의 나들목의 장치이면서 동시에 기억 그 자체다. 쉽게 설명되지 않던 그때의 그 감정들이 빛을 통해 떠오르면 작가는 그 감정들을 다시 빛을 통해 전달한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감정의 메시지들은 대부분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재현되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감정들이 배어나오는 장면들이다. 어두컴컴했던 앞집의 창문에 불이 켜지고 살짝 열린 셔터문 안쪽에서는 누군가 불을 켜놓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린 서로의 외로움을, 삶의 고통을 나누고 있다는 위안을 얻는다. 따라서 우리 마음의 불빛도, 사는 인생의 불빛도 이젠 환하게 ‘온!’.

(글. 임대식.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