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이시형 기획초대전 "달과 시인"
전시기간: 2015년 09월 18일 ~ 10월 06일
전시 오프닝: 2015년 09월 18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출품 수: 사진 8점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파란밤, 달을 읽다


문득, 달이 유난히 밝았던 그 해 겨울 밤 달빛을 가득 담은 눈길에서 올려다 본 파란 하늘이 떠올랐다. 그 하늘은 별빛도 잠길 만큼 한없이 깊고 깊었었다. 그리고 그 파란밤 달은 유난히 높고 담백했다. 달은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정서를 자극하면서 많은 부분 우리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달은 수없이 많은 이들의 간절한 바램과 애환이 담겨 있는 자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깊은 밤 달빛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를 부드럽게 만들어 사물의 정취를 고양시킨다. 서양의 사고방식이 밝고 어둠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햇빛 같은 이분법적 성향이 강하다면 우리의 사고방식은 달빛처럼 대립보다는 융합을, 비교보다는 전체적인 관망을 우선시해 왔다. 즉, 달빛은 밝고 어둠을 경계화하지 않는다.


이시형은 달빛을 카메라에 담는 사진작가다. 일상의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았다면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늘 일상의 공허와 단절 속에서 허공에 색을 칠하 듯 작업해 왔다. 그래서 였을까. 그가 바라 본 하늘엔 늘 달이 있었다. 어떤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상대적 결론보다는 처음부터 늘 있어왔던 것을 새로이 발견하듯이 작가에게 사진은, 특히 카메라는 제 삼의 눈이다.


작가는 삶, 죽음과 같은 실존적 질문 보다는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아름다움에 더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 관계에 대한 작가의 예민함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저마다 삶의 아픔을 스스로 감내하고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작가 특유의 애정이 곧 작가의 조형언어가 되었다. 따라서 파란밤의 달은 외롭지만 선명하다. 그리움으로 가득찬 초승달이다.


고통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정신적 고통까지 고통은 고스란히 우리의 기억에 남는다. 육체적 고통을 잘 들여다 보면 인과론을 살짝 비틀고 있다. 말하자면 손가락 끝의 고통을 통해 상처를 발견한다. 이건 명백한 어떠한 원인의 결과다. 그러나 우린 그 원인을 모른다. 원인으로 결과를 가늠하는 과학의 영역과는 달리 인문학의 영역은 결과를 통해 원인을 유추한다. 마찬가지로 파란밤의 달빛은 수없이 많은 이들의 기쁘고 슬프고 그리웠던 감정들의 결과다. 작가는 그 결과로 만들어진 다양한 삶의 원인들을 찾는 중이다. 거기에 자신의 고통의 결과까지 담아서.


작가의 기억에는 달빛을 드러내기에 겨울밤이 가장 맑았었던것 같다. 공기의 온도에 따라 뷰파인더로 보는 밤의 색과 채도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도 그 온도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시형의 겨울밤은 파란색이다. 새벽이 오기 직전의 색이다. 고통이 최고조에 달하고 새날에 대한 희망이 최고조에 달하는 색이다. 그래서 파란 밤이 작가에게는 가장 맑은 밤으로 기억되었는지도 모를일이다. 그 맑은 밤 속에 나무가 흔들리고 그 사이로 초승달이 떠 있다. 작가에게 나무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지옥으로 뻗어야 하는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마치 롤모델과 같은 존재다.


이시형의 달사진은 그 기본이 삶의 담백함이다. 파란 겨울밤의 쓸쓸함 속에 간결하면서도 다양한 사연들의 함축적 의미를 지닌듯 한 초승달은 작가의 삶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 보름달처럼 홀로 밝게 빛나지는 않지만, 밝은 별빛과 어우러져 고즈넉하게 자신을 밝히고 있는 시대를 고민하고 나누고자 하는 작가의 절실한 표현의지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시형의 별빛, 나무, 밤 그리고 달은 그의 카메라로 쓴 한편의 시다. 삶은 고집스럽게 집착하면서 살일도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포기하며 살일도 아니다. 주어진 시간동안 얼마나 자신의 삶에 진지했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 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매순간 감사하며 살아왔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담백한 이야기. 이시형의 파란밤, 달빛에서 읽혀지는 메시지다. (글. 임대식 /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