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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신형섭 기획초대전 "Object
Matter"
오브제의 물성을 통한 감각의 리프레싱 꽤 낡은 의자다. 나름 '빈티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의자 위에서 무엇인가 돌고
있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LP판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33 1/2rpm이나 45rpm으로 도는 턴테이블도 아니다.
오래된 턴테이블에서나 볼 법한 78rpm으로 도는 LP판이다. LP판의 소리를 내는 바늘은 붉은 색 바탕에 흰 색으로 'Enjoy'라고
로고가 찍힌 코카콜라 페트병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병에서 음악이 흘러 나온다. 플라스틱 병으로 만든 간이 스피커다.
귀금속이나 보석을 가지고 예술작품을 제작하던 중세시대는 그야말로 '오브제'의 시대였다. 그 후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미술 속의 오브제는 점점 잊혀지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다. 콜라주나 아상블라주
기법은 이러한 오브제를 통한 예술 활동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었다.
기본적으로 신형섭의 작업을 차용, 방향전환, 낯설게 하는 현대 오브제 아트 전략의 흐름 속에 위치지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형섭은 이러한 차용과 방향전환의 레디메이드 작업에 자신의 손을 덧입힌다. 일상의 평범한 '레디메이드' 제품을 해체하고 이를 '수공적인' 자신 만의 DNA로 꼼꼼히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그렇기에 역설적이면서 양가적이다. 대량생산과 수공, 순간과 긴 시간, 가벼움과 진중함이 그의 작업 속에서 공존한다. 12월 11일부터 28일까지 쌀롱 아터테인에서 열리는 신형섭의 개인전 <Object Matter>는
오랜 기간 활동했던 미국에서의 작업과 함께 지난 해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작업한 결과물을 살펴보는 자리다. 이렇듯 이번 전시에는 기존 레디메이드 오브제의 해체, 아상블라주 작업과 세상에 출시되는 다양한 오브제의 물성을 자신 만의 시각으로 비틀고 재구성한 수공적인 작업까지, 작가 작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앞에서 언급한 <Enjoy Classic>을 살펴보자. 2000년에 미국에서 제작한 이 작품은 레디메이드 의자와 턴테이블 모터, 코카콜라 페트병을 조합하는 아상블라주 방식의 작업이다. 특이한 것은 이 작업에는 키네틱적 요소를 가미해 형태적으로는 기존의 턴테이블과 다르지만, 실재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고, 이 소리를 통해 관객에게 시각적 충격 외에 청각적 유쾌함까지 제공한다. 기존의 형태에서 다른 용도로 전복되고, 이것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흥미로운 오브제 작업으로 치환된다. 특히 코카콜라 페트병의 ‘Enjoy’ 문구는 작가의 ‘깨알 같은’ 유머로 읽히는데, 이를 보면서 듣는 음악 자체가 시각적, 청각적 유희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준다.
<Breath>는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아상블라주하는 전통적인 개념의 오브제 작업과는 차이가 있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레디메이드 제품의 물성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이 작업은 평면의 오브제를 총알이 뚫고 가면서 유리처럼 깨졌다는 느낌을 받는데, 실상 이 작품의 재료는 바로 종이다. 찢어질 수는 있어도 깨질 수는 없는 종이의 물성에 유리 같은 느낌의 물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형태의 전복이 아닌 물성의 전복을 통해 관객들에게 신선함과 낯선 느낌을 제시한다. 미국에 있을 때 종종 접했던 총기 사건, 폭력에 대한 은유를 작가는 이러한 물성의 반전을 통해 구현해 내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는 총알이 뚫고 들어간 구멍이다. 이 구멍은 순간적으로 발생하지만, 이를 표현한 작업은 종이 조각 하나하나를 잘라내 재구성하는 전통적인 조각의 방식을 사용했다. 순간과 긴 시간의 대비가 이 구멍과 재질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흥미롭다. 이 작업에는 이렇듯, 오브제 물성의 전복, 제작 방식의 전복 등 작가가 추구하는 전복과 전위의 전략이 뚜렷이 드러난다. <Plastic object-Study No.1>은 배드민턴 라켓으로 제작되었다. 라켓줄들이 중첩된 배드민턴 라켓들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작업은 결과적으로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이용한 몬드리안 풍의 콤포지션 작업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작품은 배드민턴 라켓을 단순히 모아서 조합한 것이 아니라 모든 라켓줄들을 하나로 연결했는데, 여기서 신형섭 작가가 추구하는 컨셉추얼 오브제 작업과 수공의 결합을 통한 제작방식을 엿볼 수 있다. 오브제를 이용한 시각적 콤포지션 작업은 역시 우리에게 제작 방식의 반전, 시각적 유희를 제공한다. <Plastic object-Study No.2>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여기서 주가 되는 오브제는 바로 스티로폼이다. 구형의 사이즈 별로 제작되는 스티로폼을 이용한 이 오브제 작업은 레디메이드 물건을 변형하지 않고 이를 재구축하는 방식으로 형태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 작업은 위에도 언급했듯이 두 가지 컨셉트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크랙의 너비 속에 그 시각적 신선함과 내용의 충실함이 존재한다. 너무나 가벼운 재질인 스티로폼을 정확한 수열에 따라 진중하게 배열하는 행위는 ‘가벼움’과 ‘진중함’이라는 불협화음을 낳고, 30, 18, 15cm… 사이즈로 출시되는 ‘기성제품’과 이를 하나하나 계산해서 붙여나가거나 틀에 넣어 도형의 형태를 구축해가는 ‘수공성’이 대비되면서 작업의 전위성이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최근 제작한 <Energy field>는 자기공명장치(MRI)에 사용되는 강력한 자석을 이용한 오브제 드로잉 작품이다. 벽의 반대편에 설치된 강력한 자석은 철선과 못, 너트 등 다양한 금속제 오브제를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으로 배치시킨다. 자성의 범위 내에서 우연한 라인과 형태의 드로잉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설치할 때마다 자유자재로 형태가 변화하는데(전시 기간 중에도 변화할 수 있다), 이 속에서 드러나는 우연성 속의 시각적 아름다움은 오브제 아트에서 이른바 이야기하는 ‘선택’과 방향전환, 제시를 넘어선 또다른 미감의 표출이라는 생각이다. 신형섭의 작업을 정리하면, 오브제가 지니는 형태와 물성을 비틀어 드러내는 시각적 유희,
마인드 리프레싱과 전통적인 조소 방식인 손의 수공성이 신선함과 노스탤지어를 양가적으로 드러낸다. 즉 작품 자체의 전위성과
작품 제작 태도의 보수성이 결합, 대비되면서 그의 작업은 20세기 초기 오브제 아트의 정신과는 또 다른 자리매김을 가능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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