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Sehwan Noh "Meltingdown"
Date : Mar. 1st ~ Mar. 26th, 2019
Opening : Mar. 1st, Fri. 6 pm
Place : Salon Artertain (Yeonhi-dong, Seodaemungu)
Curator : Heeseung Hwang (+82 (0)2-6160-8445)

 

녹는다는 것은, 변화를 위해 합쳐지는 것이다.

지식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습득된다. 지식의 습득을 위한 경험은 직접적인 경험뿐 아니라 간접적인 경험들이다. 미디어가 발달된 요즘에는 대부분의 지식을 간접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습득된 지식은 사실 여부에 있어 너무나 명확하지만, 간접적인 경험들은 사실 여부에 대한 증명이 쉽지 않다. 물론, 대중들의 이해와 인정을 통해 그것은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증명된다. 그렇게 증명된 지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확산되면서 보다 더 확고하게 사실로 인정받게 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적 사고의 근간이 되는 지식들 역시 태초의 텍스트의 약 2천년 간의 재해석과 재생산의 역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떠나 진리로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다. 엄청난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21세기는 보다 더 빠른 소통과 재생산의 방식을 통해 간접의 경험들이 순식간에 진리가 되고, 사실 증명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미디어에 노출된 이야기들은 그 내용보다는 미디어에 대한 신뢰와 그 미디어의 권위에 의해 사실로 인정받게 된다. 내용의 진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에 노출되었다는 것이 더 확고한 믿음으로 작용된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습득하고 있는 지식은 잘못된 정보와 함께 습득되고 있음에 항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노세환 작가는 이러한 잘못된 정보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비트는 작업을 해왔다. 그것도 사진이라고 하는 매체로. 작가가 선택한 매체인 사진은, 그의 생각을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매체였다. 사진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 사진에 노출되는 피사체가 던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중요했다. 물론, 직접 그리는 작업을 선호하기는 했지만, 보다 빠르게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는 사진이 그에게는 더 깔끔한 재료이며, 매체였다. 문제는 자신이 이야기를 대변할 수 있는 피사체를 찾거나 만드는 것이었다. 따라서 작가의 사진은 회화처럼 에디션이 없다. 처음 작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체들을 녹였다. 사실 녹였다기 보다는 녹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작업들이다. 실제는 흰색 페인트가 물체를 감싸고 흘러내리지만 결국, 페인트는 굳는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작가가 선택한 물체들의 실체는 없어지고, 그것은 무엇이었다는 우리가 사실로 여기던 정보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작가는 그 물체의 의미를 녹이는 것이다. 나아가 다양한 색으로 물체를 녹임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물체에 대한 정보를 한번 더 의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아무런 거름망 없이 미디어에 쉽고, 빠르게 노출될 수 있는 빅데이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미디어가 바로 지식의 근거이며 원천이 될 수 밖에 없다.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새로운 알고리즘을 찾아서 또 다른 결과와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이미 사람의 감정까지 데이터화 할 수 있는 지점까지 와 있다. 따라서 인간만의 예민한 감수성을 돋보이는 것이 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여진다고 할까. 하지만, 그 미각이나 예민한 감정들은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예민하다고 하는 미각과 감각들 역시 미디어에 의해 이미 학습되어 왔던 것은 아닐까. 노세환 작가는 ‘학습된 예민함’이라는 전시를 통해 우리의 감각이 이미 미디어에 의해 세뇌된 객관성이 아닐까 고민해 왔다. 그 동안 고집스럽게 자신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생수 라던지 제품들의 라벨을 없앴을 때, 과연 우리는 그 맛을 구별해 낼 수 있을까. 어쩌면 자신의 입맛을 까다롭게 고집해 온 나의 예민함이 자기 만족을 위한 정신적 사치는 아니었을까.

작가는 0.000007456 마일의 수조를 만들었다. 이는 단위를 환산해 보면 1.2cm의 수조다. 일반적으로 마일은 깊고, 먼 거리를 표현할 때 쓰는 단위다. 따라서 1.2cm를 마일로 환산했을 때, 느낌은 왠지 깊은 물 속 어딘가를 일컫는 것 같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을 방해하는 정보들이나 상식이라는 것이 오히려 실제에 대한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단위가 가져다 주는 일반적인 상식들이 우리의 편리를 위한 것이지, 사실 그 자체를 명확하게 측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위는 단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명작이라고 하는 것 역시, 정말 내가 그 작품에서 받은 감동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아니면, 수없이 많은 대중들이 명작이라고 해서 명작이라고 믿게 된 것인지, 미술관에 놓여져 있음으로 해서 당연히 명작이라고 믿게 된 것인지, 여전히 사실과 그것에 대한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우리 주변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작가는 중국집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그릇들을 흰색으로 칠하고, 백자가 소장되어 있는 박물관과 같은 조건으로 전시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미디어와 언론에 길들여진 대중들에게 과연 고귀함과 아름다움은 어떤 의미일까. 미디어의 권위에 길들여진 사회적 강요로 인해 짜장면 그릇이 백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해, 균형, 통합과 같이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담론들이 오히려 개인적 자율성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노세환 작가의 신작 정물작업은, 정물들에 흰색 페인트를 칠함으로써 물체 자체가 지닌 성격과 의미들을 없애고, 다시 그 위에 우회적인 회화 (사진기법과 회화기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작업을 통해, 물체 본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작가는 미디어나 권위적인 언론, 사회적 강요들에 의한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순수하게 실제와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또한, 노세환의 정물작업은 세상을 보다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사고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