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이상원 기획초대전 "Mono . Gaze"
전시기간: 2016년 5월 13일 ~ 5월 31일
전시 오프닝: 2016년 5월 13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Mono . gaze : 일방적으로 바라보기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는 일종의 시각적인 대화다. 내가 무엇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이 나를 바라본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내가 바라보는 그 무엇도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눈과 같은 감각기관이 있는 대상이든 아니면 완전한 사물 그 자체의 대상이든 바라보는 것은 항상 동시에 진행되는 행위다. 그것은 또한, 에너지의 교환이기도 하다. 나를 바라보지 않던 사람이나 사물도 내가 바라보면 그 시선에 담겨진 에너지를 느껴 나를 바라보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감각적 교류가 아니라 정신적인 교류로서의 바라보기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 같은 관찰자의 시선은 살짝 다른 성격의 바라보기다. 자신의 생각을 싣게되는 고정적인 시선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바라보기다. 이는 단순한 필터링으로서의 객관적인 바라보기이기도 하다. 결국, 작가의 시선은 화면으로 옮겨지면서 관객이라는 또 하나의 시선과 마주해야한다. 따라서 일차적인 삶의 공간에서는 자신의 시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상원 작가는 수채화를 주재료로 속도감있게 그리는 작가다. 그가 주로 그리고 그려왔던 것은 흔히 이야기 하는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 즉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여가를 즐기기 위해 모여 있는 장면들이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군중 심리, 매스 미디어 등에 노출된 곳에서의 레저다. 지친 삶의 여가를 즐기는 부분도 있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으로 가게 되고 그럼으로써 레저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대중적인 함의에 의해 정해진 레저를 반복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찾는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무리지어 휩쓸리게 만들고 의미없는 행위들을 반복하게 만드는가. 하나의 패턴화 되어버린 삶의 여가를 의미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이 질문에 ‘바라보게 만드는 힘’으로 답한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는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미적 감성의 자극이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의 여가를 위해 무료했던 내 삶에 집중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소소한 그 무엇들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 바라보게 만드는 힘. 그 내공을 쌓는 일이다.


바닷길이 열리는 진도, 전쟁기념관, 수영장, 전국노래자랑, 연등회, 소풍 등 정말 말그대로 우리가 여가 시간을 이용해 흔히 가는 장소를 작가는 끊임없이 관찰하여 그 장소가 지닌 특성이라든지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특성이나 패턴을 그린다. 따라서 주로 새의 시선과 같이 위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관찰한다. 수채화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패턴화된 여가를 즐기는 군중들은 많은 부분 생략되고 단순하게 그려진다. 각각의 사람들의 개성은 사라지고 사방연속무늬와 같은 패턴이 만들어진다. 이는 그의 미디어 작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작가 특유의 패턴화 작업이다.


뛰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흔히 우리가 여가 시간에 운동삼아 하는 것들이다. 작가는 수채화로 수없이 많은 이들의 예를들어, 걷는 사람들을 그렸다. 거짓말 좀 보태 수백장을 그렸다. 그리고 그 다양하게 걷는 모습들을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연결하였다. 흡사 한사람이 자연스럽게 걷는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각각의 프레임을 연출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다른 사람들이다. 나머지 뛰고, 인라인을 타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람들의 포즈를 프레임으로 연결하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작가의 애니메이션 안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동작을 무한 반복한다. 그 애니메이션의 단순한 동작에서 오는 역동성과 여러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마치 매스게임과 같은 이미지는 많은 부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말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서 단지 하나의 역할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걷는 행위의 전체보다는 다리 하나만 들고 있는 자세로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작가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은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 것 말고도 내안을 바라보는 힘으로도 확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일방적으로 바라보기는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 철저하게 객관성을 띄게 되지만 일단, 작품으로 완성된 후에는 우리에게 아주 굉장히 주관적이면서 개인적인 시선을 만든다. 우리가 살아 오면서 그가 그려놓은 여가의 공간에 안가본 사람이 없을만큼 그 공간들은 너무나 대중적이다. 따라서 작가가 바라봐 준 그 공간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과연 저 속에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었을지 순간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한 파트에서부터 시스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내 삶의 버드아이뷰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