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김이수, 김진 기획초대전 "Two Landscapes"
Date : 13th, Aug. ~ 31st. Aug. 2021
Opening : 13th., Aug Fri. 6 pm
Place : Artertain (Yeonhi-dong, Seodaemungu)
Curator : Heeseung Hwang (+82 (0)2-6160-8445)

 

경험할 수 없었던, 풍경과 영역의 차이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은, 지극히 현실적일 수 밖에 없다. 너무나 확고한 사실적 근거들은 그 이면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내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들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고. 세상의 사물을 그리고 그 사물을 정의하고자 했던 다양한 사고들 중에 하나는, 현재 우리에게 보이는 것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즉, 경험적으로 만져지고 그 경험들로 인해 모든 이들이 그 사물을 동일시 할 수 있는 정보를 부정하고, 그 사물과 나만의 관계에 대해서만 집중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잔이라고 해도, 내게는 따뜻했던 경험이 있고, 누군가에는 너무나 차가웠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면, 아무리 똑 같은 잔이라고 해도 각자의 경험에 의해 명백히 성격이 다른 잔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보여지는 풍경은 혹은, 시각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사건의 현장은 아무리 객관적인 사건이고 사실이라고 해도, 보고 정의하고자 하는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관념론적인 논리와 유물론적인 논리들이 역사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방법론들의 키워드를 바꿔왔던 것 같다. 눈을 감았을 때, 그 어떤 사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리 눈을 감아 보이지 않는다고 한 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물질들은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의 신체 자체가 물질이며 그 물질을 통해 우리의 정신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연구 대상들이다.
김진과 김이수의 풍경은, 그 들의 표현 그대로 ‘Landscape’라는 의미로 정체성을 찾고 있다. 하지만, 두 작가의 풍경의 시작점을 쫓다 보면, 이들의 작업을 같은 풍경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묶기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생긴다. 어쩌면 그들의 작업들이 풍경, Landscape라고 하는 의미를 넘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고자 했던 풍경을 같이 공유하고자 한 김진과 서로의 감정과 감정사이의 간극의 만들어 내는 풍경을 그리는 김이수의 작업들은 공통적으로 ‘Landscape’ 라는 개념을 가지고 왔다. 지극히 개념적인 풍경들을 그리고 있는 두 작가의 ‘Landscape’은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걸까.
우선, 김진의 풍경은 수 없이 많이 쌓여진 삶의 간극들로 만들어 지는 풍경을 그린다. 내가 속하지 못한 혹은, 누군가 나와 함께 경험할 수 없었던 순간의 풍경들. 소외되고 소외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순간의 풍경들이다. 겪지 않아도 될 경험과 겪어 보고 싶었던 경험들이 겹쳐지는 순간의 풍경. 이는 현재의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모순의 풍경이기도 하다.


반면, 김이수의 풍경은 우리의 정신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기호와 같은 풍경이다. 0과1로 모든 정보를 정의하고 있는 디지털 기호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그의 풍경은, 숫자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차이를 그리고 있다. 그가 표현하는 ‘차이의 풍경’은, 절대 수치로 혹은, 무엇과 무엇이 다르다는 기호적인 의미로 파악되는 풍경은 아니다. 치밀한 감각의 차이, 나아가 찰나적 정신활동에서 오는 감정의 차이로 느낄 수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 두 다른 풍경이 한 공간에 있을 때, 우리의 사고는 풍경을 넘어 우리의 영역으로까지 확장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역은 단순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역은, 내가 차지할 수 있는 또는, 차지하고 싶은 공간을 의미한다. 해서, 김진의 감정이 소통될 수 있는 공간, 김이수의 정신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들이 동시에 만들어 내는 풍경들을 통해, 내가 찾고자 했던 아니, 지금 찾고 있는 나의 영역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