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 김수진 개인전 "어쩌면 기억될
장면"
Date : 05th, Dec. ~ 28th, Dec., 2025
Opening : 05th, Dec., 2025 (Fri.) 6 PM
Place : Artertain (Yeonhi-dong, Seodaemungu)
Curator : Heeseung Hwang (+82 (0)2-6160-8445)
Caution for Surreal : 초현실 주의
현대 회화에서 ‘감정’은 더 이상 쉽게 표현되거나, 익숙한 해석의 틀 안에서 가볍게 전달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은
과잉 재현되거나 소비되는 이미지 문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그 의미를 획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비가시성, 그리고 특정한 의미와 대응되지 않는 비정합성으로부터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 다양한 사고의 흐름을 추적하게 만드는
김수진의 회화는 바로 이 지점, 즉 ‘감정의 비표정성(impassive affect)’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작가의 화면 속 대상들은 어딘가 가려져 있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징후가 삭제된 채 대부분 ‘상황’만 남아 있다. 이는 명확히
읽혀버릴 수 있는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그 자리에 보다 복합적이고 층위적인 정서적 체험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한다.
작가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감정이 만들어내는 표정을 제거하고, 시각적 단서가 부족해진 화면에서 관객 스스로의 서사와 경험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투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마련한다.
말한 대로 김수진 작업의 핵심이 감정의 삭제를 통한 감정의 재구성이라면, 전혀 다음을 예상할 수 없는 미묘한 상황, 멜랑콜리한
배경의 정적, 손과 발과 같은 비표정적 신체. 이 모든 요소는 감정을 억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감정이 생성될 공간을 비워두는
전략적 비표정성들이다. 이는 어느 유명한 프랑스 현대철학자가 언급한 ‘감정의 흔적이 아닌 감정의 기계(affect-machine)’
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다. 즉, 감정은 이미지 속 특정 인물의 표정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배경이 이루는 관계적
구성에서 충분히 발현된다.
이러한 ‘감정의 기계’는 작가가 경험한 일상의 균열에서 출발한다. 질투?시기?선망의 세밀한 차이, 위선적 장면을 목격한 경험,
네잎클로버처럼 우연히 찾아오는 사소한 행운, 혹은 ‘나만 볼 수 있는 색’에 대한 사유는 모두 불투명한 정서의 잔상으로 축적된다.
작가의 단상들은 특정한 감정의 대상을 고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감정이 발생하는 조건을 탐구하는 사유적 흔적들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유성처럼 쏟아지는 날”,
“바닥에서 하늘을 보았다”,
“발가락으로 발바닥을 긁는 우아한 사람”
이러한 단상들은 현실의 균열이나 잔여 감정의 포착이며, 그것이 작가의 작업속에서 회화적 서사로 확장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현실(Surreal)의 개념 역시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이러한 지점에서 다르게 해석된다. 김수진의
초현실은 초현실주의의 전통처럼 무의식의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이 너무 선명해 낯설어진 순간들’, 즉 현실의 결이 어긋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의 층위라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초현실은 현실의 파열음이며, 감정의 경계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Caution for Surreal’은 초현실을 경계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해석을 경계하라는 인지적 주의 환기다. 초현실은 위험한 상상이 아니라 감정이 확장되는 가능성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회화는 제작 과정에서도 이러한 확장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구현한다. 텍스트 - 이미지 리서치 - 디지털 콜라주 - 수채
드로잉 ? 페인팅(유화)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단계는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재해석되며 의미적 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이다. 최종적으로
유화작업은 디지털 이미지와 드로잉이라는 두 개의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색채와 구도를 재조합하며, 이 과정에서 원본 사진의 서사는
사라지고, 정서적 구조와 공간이 확장된 초현실적 장면으로 전환된다.
다시 말해, 김수진의 회화는 단일한 감정의 재현을 거부하고, 감정이 부유하는 장면적?다층적 서사 구조를 만든다. 이 구조는
관객에게 단일한 읽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감정적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대상들을 통해 관객은 해석의 자유 영역 속에서 자신만의
서사를 구성하게 된다. 작가가 “누구도 화면 속에 동화되지 않도록 한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해석적 거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는 관객의 위치를 능동적 해석자로 전환하며, 회화가 고정된 의미 전달 장치가 아니라 감정의 유동성을
탐구하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하게 만든다.

작가의 작업에는 ‘두려움’, ‘불안’, ‘위선’, ‘자기보호’, ‘관찰’, ‘기대와 좌절’, ‘확신과 의심’ 등 이중적?양가적
정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네오포비아” - 새로운 것을 경계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관심 - 는 그의 회화가 불안을
억누르기보다 불안의 조건을 드러내고, 이를 재배열하는 사유적 실험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김수진의 회화는 단순한 개인적 정서의
기록이 아니라 현대인의 감정 구조를 분석하는 하나의 미학적 제안으로 확장될 수 있다. 불확실성, 시선의 부자유, 자기검열,
사회적 관계, 진실의 뒤늦은 발견 등 작가가 포착한 정서적 단편들은 현대적 감정 지형도를 구성하는 재료가 된다.
따라서 초현실에 대한 작가의 방식은 이러한 감정의 지형도 위에서 작동한다. 관객은 화면 속 대상들과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바라보는 자’로 위치 지워진다. 이러한 능동적 거리감은 감정을 깊이 파고들기보다, 감정이
생성될 시간과 여백을 관객에게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현실을 거부하는 듯 보이는 장면들은 해석의 여지를 제한하기보다
오히려 열어두며, 감정은 고정되지 않고 여러 갈래로 번져나간다. 이 번짐의 과정 자체가 작품의 형식이자 내용이 된다.
김수진의 회화는 결국 현실의 과잉에서 비롯된 초현실, 그리고 말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생성되는 감정의 언어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작업이다. 화면 속 대상들의 침묵은 공허함이 아니라 여러 감정 가능성을 품은 침묵이다. 초현실은 현실을 도피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정교한 재배열이 이루어지는 사유의 장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의 ‘주의’는 정확히 기능하게 된다.
Caution for Surreal〉?초현실에 주의할 것.
이는 감정적 진실이 숨어 있는 자리로의 초대이며, 그곳으로 가는 일종의 지름길인 셈이다. 또한, 우리에게 감정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정을 사유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라는 제안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제안을 과잉되지 않은 초현실적 장면으로 구현하며,
그 장면으로 관객 스스로 자신의 감정 구조를 다시 읽어낼 수 있도록 침묵의 공간, 여백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글. 임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