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김진 기획초대전 "Fictional Life"
전시기간: 2018년 2월 23일 ~ 3월 13일
전시 오프닝: 2018년 2월 23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그리기에 담긴 삶과 색


그리는 것, 늘 얘기하지만 그것은 우리 정신활동과 감성을 다루는 일이다. 무엇을 그린다는 것은 그려지는 대상과 그것을 그리는 주체(작가) 사이의 감성적 교류이며 그 교류의 과정이 곧 그림이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실존하는 것이든 작가의 경험과 정신활동에 기인하는 것이든 그림은 언제나 그려지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그 대상들과 소통한다. 간단하게 소통은 감성의 교류이며, 그리움과 같은 감성활동과 같은 것이다. 그림은 ‘그리워하다’라는 동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움은 언제나 절실하다. 따라서 그리는 행위는 절실함, 그 자체이며 그 절실한 행위의 과정과 결과는 온전히 그림으로 남겨진다. 그렇게 그림은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는 감성들을 담아내고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담기도 한다. 그 얽히고 설킨 사회적 관계 역시 우리 정신활동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의 조형언어는 ‘들여다보기’다. 그리고 강렬한 그리는 행위다. 그의 그림이 담고 있는 강렬함은 ‘그리워하다’와 같은 지극히 동사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 일단, 김진은 대상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는, 오래 전 영국 유학시절 당시 외국인으로서 타 문화를 바라보면서 시작된 그만의 방식이다. 그들의 문화 속엔 늘 난 이방인이었던 그 시절, 작가는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것이 창 밖에서 바라 본 그들 삶의 공간 속에 자신의 자화상을 투영하는 방법이었다. 그 시선은 객관적이면서도 오직 작가의 감성만 존재하는 시선으로서 작가는 오직 그 객관적인 공간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의 삶과 도저히 그 공간에 존재할 수 없을 자신의 삶을 강력한 그리기의 행위로 교차시키고 교류시켰다. 그럼으로 그의 작품 속에서 그 공간은 그들의 공간이면서 김진의 은밀한 정신적 공간으로 재탄생 되었다.


이후 낯선, 객관적인 공간 속에 보일 듯 말 듯 드리워졌던 그의 자화상은 공간을 휘감고 있는 색의 향연으로 치환되었다. 이는 공간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작가의 의지이면서 동시에 바라보는 시선을 보다 더 작가 쪽으로 가져오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김진의 조형언어로서 ‘들여다보기’의 매개는 창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창이 매개이면서 그가 색으로 행위 하고자 하는 또 다른 소스로서 그 자체 대상이 된다. 그가 들여다보는 공간이 그의 감성과 맞닥뜨려지게 되는 순간, 그는 자신이 들여다보는 창문이 아닌 저쪽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수 많은 감정들을 색으로 흩뿌리거나 들여다 본 공간을 세상에서 가장 낯선 공간으로 바꿔버린다. 이는 실존의 공간이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감성의 공간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가 들여다보는 곳은 텅 빈 공간이 아니다. 지금 막 누군가 무엇인가를 하다가 떠난 공간. 이는,곧 누군가 들어와 그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가 들여다보는 공간은 대부분 서재다. 물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풍경들을 낙서하듯 그리기도 하지만, 그의 작업 전반을 꿰뚫고 있는 대상은, 들여다보는 대상은 서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사회적 관계를 통해 길들여진 지식인들의 허무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삶. 또는, 작가 스스로의 삶에 대한 관찰. 과연 우리는 각자의 삶에 솔직할 수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누군가에게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시대를 같이 살고 있음으로 희미하게나마 감사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작가는 소비로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적 삶이 패턴화된 껍데기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리는 행위는 우리의 삶을 객관적이면서 아름답게 바라보고자 하는 감성에서 비롯된다. 사실 그대로 들여다본 김진의 공간에는 늘 창문이 있다. 그리고 그 창문으로부터 빛이 꽂힌다. 그 빛은 작가의 반사적이면서 반성적인 감각을 자극한다. 그 자극은 곧 그의 그리는 행위로 이어진다. 사회적 관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 등등의 문제들이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이던 그의 공간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빛으로 환원되는 시점. 온전하게 그리는 행위로, 동사적 관점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게 되는 것. 색이 곧 삶을 대변하고 변호하게 되는 순간이다. 김진의 ‘그리워하기’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