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김동현 개인전 "Bubble Light"
Date : 20th, Mar. ~ 05th, Apr.., 2026
Opening : 20th, Mar., 2026 (Fri.) 4 PM
Place : Artertain (Yeonhi-dong, Seodaemungu)
Curator : Heeseung Hwang (+82 (0)2-6160-8445)

 

가장 편안했던 곳, 거기, 안식처

현재 우리는 너무나 넘쳐나는 이미지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 살고 있다는 의지보다는 살아야 한다는 수동적인 의미가 더 맞을 듯하다. 이러한 이미지의 과잉은 불과 몇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미디어 환경의 발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이미지의 복제와 재복제가 연속적으로 우로보로스처럼 도저히 그 시작과 끝이 분리되지 않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모든 개체들이 스스로의 세계에서 생성하고 소비하는 구조를 갖게 되면서 만들어진 환경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가장 순수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것, 회화다. 물론, 가장 순수하다는 말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그 이미지들의 중심에 생각하고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창작의 주체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리는 행위로부터 시작되어 사고의 영역까지 확장해 나가는 회화라면 더 이상 이미지의 범람 혹은 과잉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점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현의 회화는 바로 이러한 동시대 이미지 환경을 일종의 사유하는 풍경으로 해석하는 순간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의 풍경은 자연의 재현이라기보다 기억과 이미지, 신화와 문화적 기호가 겹쳐지며 형성되는 거대한 시각적 담론이 형성되는 하나의 복합 구조다.


작가가 구성하는 화면은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 즉 지속과 연결된다. 베르그송의 지속의 시간은 분절이 가능한 물리적인 단위가 아니다. 기억과 경험이 서로 스며들고 상관하는 내적인 흐름이다. 과거는 물리적 시간으로 인해 뒤로 물러나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며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현재의 감각과 결합하여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김동현의 회화는 이러한 지속적인 시간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의 이미지들은 어떤 측정 가능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는 기억과 상징들이 겹쳐지면서 드러나는 이미지들이다. 이 이미지들은 단독으로 각자의 상징을 지니지만 서로의 영향 없이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가 애매해진다.


특히 산수화의 사유적 공간을 차용해서 구현된 작가의 화면은 작가가 바라보는 동시대의 다양한 관계를 사유하는 철학적 공간이다. 따라서 그의 공간은 고정된 하나의 시점으로 읽히지 않는다. 작가가 상징하는 것들이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말고 그 이면에 놓여 있는 다른 상징을 읽지 않는다면 결코 그가 차용해 온 산수화의 구조 자체의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작가의 공간은 산수화의 구조를 동시대적 이미지 생성 혹은 소통의 환경 속에서 다시 변형한다는 것이다. 그의 풍경은 자연의 질서를 재현하는 공간이기보다는 이미지 각각에 담겨 있는 기억들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화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뒤집힌 산수 구조다. 화면 상단의 산과 풍경은 아래쪽에서 다시 반사되거나 뒤틀린 형태로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산수화의 공간 구조를 흔들고 있다. 위와 아래, 실재와 반영, 원본과 복제의 관계가 모호해지면서 풍경은 다시 사유의 공간으로, 또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공간 구조로 인한 편안하고 안정적인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구조는 동시대 이미지 환경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복제되고 확장되며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흐린다. 이미지들은 서로 반사되고 증식하며 하나의 거대한 시각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지만 그 구조는 동시에 매우 불안정하게 느끼게 하는 구조다. 김동현의 화면은 바로 이러한 이미지 체계를 풍경의 형태로 만든다. 화려한 동물과 신화적 존재, 전통적 건축 이미지와 현대적 색채는 서로 겹쳐지며 하나의 혼성적 세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혼성적 풍경 속에는 흰 공작, 커다란 뿔을 지닌 사슴, 그리고 날개를 잃어가는 이카루스와 같은 상징적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의 욕망과 신화적 서사를 암시하는 상징들이다. 특히 아직 채색되지 않은 흰 공작은 과시와 욕망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완성되지 못한 정체성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능성이며 동시에 동시대 사회의 자기 과시적 욕망을 드러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이미지의 세계는 뒤집힌 산수화처럼 어딘가 불안정하다.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이미지와 자기 과시적 시스템은 화려하고 자기만족적인 형상들을 외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텅 빈 허무함이 느껴진다.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거대한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이미지들은 그 본래의 가치보다 더 큰 의미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 실체는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는 연약한 구조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결국 김동현의 회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이미지의 세계 속에서 우리의 기억은 과연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가장 편안했던 장소, 그 안식처는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어쩌면 우리가 찾고 있는 가장 편안했던 장소는 이미 지나가 버린 어떤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시간이 서로 겹쳐지고 혼합되어 있는 이 풍경 속 어딘가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동현의 회화에서 우리는 그곳, 거기, 우리들만의 안식처를 한 번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