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김창영 기획초대전 "Where are you from"
전시기간: 2018년 3월 16일 ~ 4월 3일
전시 오프닝: 2018년 3월 16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호흡, 사색의 시작


그의 작품은 가장 먼저 나에게 긴 호흡을 권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상상했다. 무엇을 보고 또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고정관념이 어떻게 그의 작업에서 지워지고 표현되는지. 도대체 그의 작업들은 어떤 흔적들을 남기면서 작가의 사고의 흐름들을 쫓고 있는지. 숨을 멈추고 들여다 보았다.


곡선과 직선의 흔적. 미세하게 남겨진 붓 자국들. 몇 번을 그리고 또 그것을 지우기를 반복했을 화면의 두께. 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보여지는 것들이다. 지난 작업들은 손의 흔적들이었다면, 이번 작업들은 보다 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스크린 뒤에서 비춰지는 손의 흔적들을 통해 작가는 관습과 시각적 경험으로 채워진 우리의 고정관념에 대한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손은 빛과 어둠 속에서 자유자재로 우리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이미지로 변화된다. 관념의 연속 속에서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사실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이미지화 되어 우리의 기억 속에 고정되어버린 무엇인 것들이지, 그것이 꼭 그런 이미지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전환점을 찾고 싶어 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손 그림자, 다시 말해 그 흔적들을 지난한 지우고, 그리기의 반복을 통해 표현해 왔다.


그에 비해 곡선과 직선의 흔적들이 가장 먼저 보여지는 이번 작업들은 관념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자연, 문명,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김창영 작가의 말을 빌자면, 곡선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흔적이고, 직선은 인류가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들의 흔적이라고 한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직선의 흔적을 남긴다. 나는 그 흔적을 만드는 사람 중 하나다’ 일종의 자기 고백처럼 들리는 작가의 말이다. 그리고 그 직선의 흔적들은 치명적인 상처일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희망일 수도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사고의 흐름들을 차곡차곡 보일 듯, 안보일 듯 채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어느 정도 흔적이 두께를 가질 때까지 반복하는 지루한 노동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반복 속에서 작가는 스스로의 사색과 성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곡선과 직선의 상징으로부터 작가는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인왕제색도’의 풍경이 펼쳐진 집에서 자연의 신비함에 매료되었던 유년의 기억은 늘 마법과 같이 미소 짓게 만들어 준 것에 비해 웅장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문명의 편리를 위해 지어진 빌딩과 아파트들은 어느 순간 자연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희미하게 남은 실루엣 같은 그의 이미지는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단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 이면에 깔려있는 작가의 사색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생각들이 꼬리를 물게 되면서 수 없이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들이 그의 작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인류는 현재를 살면서 행복한가. 과연 인류는 죽음의 두려움과 삶의 고뇌를 극복하면서 지속될 수 있는가. 작가는 도시화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의 고뇌와 무기력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 속에 녹아 든 호흡. 한숨과 같은 그 긴 호흡 속에서 우린 인류의 고뇌와 무기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상 그리고 질서와 규범. 이는 대립보다는 공존과 타협의 길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조금 쉽게 접근해 보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말이다. 꿈, 이상, 자유와 같이 우리의 생각들을 나타내는 말들과 개념. 그리고 이미지와 같은 기억들은 서로 공유가 가능하다. 나만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우리는 자유가 무엇인지 서로 알고 있다. 물론, 그 정도와 현실적 가치의 문제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러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그것으로 소통한다. 자유가 없다. 꿈은 이루어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뼈 속까지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관념들이다. 작가가 곡선과 직선으로 상징하고 있는 이 사회 역시 누군가 에게는 문명의 편리함이겠지만 누군가 에게는 꿈과 이상이 사라지는 말 그대로 집단의 이기와 욕망을 위해 삶의 의미도 잃어버린 채 스스로 그 집단의 부품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나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한다’ 는 작가의 말은 바로 이러한 집단의 욕망과 이기에 의해 사라져가는 인류 개개인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인 듯 하다. 현대의 삶의 고뇌와 무기력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인 듯 하다.


김창영 작가는 그 자유로운 삶을 위해 ‘실낱처럼 남아 있는 자아’의 탈출을 독려한다. 미미하게 나마 남아있는 자아의 꿈틀거리는 흔적들을 붙들고 다시 태어날 우리 삶의 이상과 자유의 꿈을 놓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도 그 꿈을 갖기를 바란다’
우리 삶의 이상과 자유. 그의 희미하게 쌓아진 흔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치고는 너무 큰 개념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분명 그와 같은 의지와 동시대를 위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 수백 번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해 왔다. 단순히 그의 작업에서 거대 개념만을 보자는 것은 아니다. 그의 땀. 그 메시지를 위한 그의 노동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붓질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그의 사색과 호흡, 그리고 땀. 그 속에, 미미하나마 남아있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이 삶의 고뇌와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하는 꿈을 같이 나누자. 라고 하는 그의 메시지는 충분히 담길 수 있을 것 같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