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Byungkwan Kim "Hysteria"
Date : Apr. 28th ~ May 30th, 2017
Opening : Apr. 28th, 2017, Fri. 6 pm
Place : Salon Artertain (Yeonhi-dong, Seodaemungu)
Curator : Heeseung Hwang (+82 (0)2-6160-8445)

 

회화적 히스테리, 평면적 자기반성


불편함.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느껴봤을 감정이다. 그것이 어떤 대상에서 감각적으로 오는 불편함이든,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서 오는 것이든 불편함은 우리에게 상당한 긴장감을 야기시킨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급기야 히스테리처럼 폭발적인 발작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따라서 불편함은 미적 감성을 다루는 회화와는 거리가 먼 감정이다. 미적 감수성이란 자고로 자극을 받으면 그만큼 아름다움에 대한 충만함으로 극도의 편한함을 느낄 수 있는 심적 경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섦은 불편함과 조금 다르다. 낯선 것 역시 그것이 대상이든 사람이든 불편한 감정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조금만 익숙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낯섦은 스트레스와 히스테리를 동반하는 불편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즉, 낯섦이 주는 긴장감은 단순히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전에 호기심으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호기심이야말로 미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가장 최초의 감정이 아닐까.


김병관 작가의 2017년, “히스테리아” 시리즈는 그 이전의 작품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지만, 이러한 불편함과 호기심에 관한 이야기다. 익숙한 색과 붓질이 아닌 그의 회화는 회화적 히스테리를 가정한 회화적 반성의 결과다. 김병관 작가는 베이컨의 ‘작가는 정육점의 썩은 고기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통해 끊임없이 익숙하고 친근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실험과 시도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회화의 최종 결과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말처럼 낯선 친근함의 결과로서의 미적 감수성의 획득일 것이다.


김병관 작가의 낯섦은 그의 팔레트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종의 그리는 방식의 전환이다. 그의 회화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의도적으로 인물을 표현하기에 익숙한 색들을 아예 팔레트에서 제거한다. 이는 기존 전통 회화의 단단한 구상성을 인정하면서도 살짝 벗어나고자 하는 작가의 반항적 태도인 듯 하다. 색은 회화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따라서 색은 작가의 감성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다. 물론, 오브제와 같이 재료 자체가 회화의 장르를 이끄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색은 회화의 가장 중심적 재료로 자리하고 있다. 그로인해 색은 작가의 또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기도 하고 작가의 성격을 구분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색은 작가에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대변하는 아바타의 개념이지 색 그 자체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 의미가 없다. 해서 작가는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지만 학부 때 들었던 색채심리학이라는 수업이 제일 한심했었다고 한다. 김병관 작가는 색의 익숙함과 고유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그리는 행위 자체를 평온함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밀어냄으로써 새로운 쾌감을 찾고자 한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새로운 쾌감을 찾아내는데 상당히 유용한 수단이 바로 회화이며 이 쾌감이야 말로 여전히 미완의 예술인, 회화의 목적임을 강조한다.


작가는 이번 ‘히스테리아’ 전시에서 코스튬플레이하는 사람들의 히스테리적 현상을 그렸다. 일반적으로 코스프레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길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에 빠져있는, 시쳇말로 덕후들이 즐겨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즐긴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주는 코스튬 뒤에 숨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 즉, 자신도 모르게 감춰져 있던 히스테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히스테리는 특정한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그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신경증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드러내고자 하거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생겨나는 정신적 이상증세로서 히스테리는 어쩌면 회화의 본질적 성격 그것이지 않을까. 따라서 작가는 히스테리를 가시화 시키는 코스프레를 통해 사람들의 욕망을 어떻게 회화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 고민은 자연스럽게 그의 독특한 작업방식으로 이어진다. 그 중 핵심적인 것이 시각적 중심에서 벗어나기다. 즉, 가장 우리의 시각에 자극을 주는 정확한 포인트의 궤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스트로크를 흐트려뜨린다거나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일부러 어긋나게 관찰한다. 이는 일종의 감정의 해체이자 시대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의 해체이기도 하며 전통적인 색의 해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를 영점 사격에 비교한다. 표적의 정 가운데를 맞추기 위해서는 총의 영점을 맞춰야 한다. 즉, 과녁을 정확하게 조준하기 위해 가늠자의 영점을 정확하게 맞춰야한다. 작가는 자신의 그리기 방식은 바로 이 영점을 일부러 틀리게 맞추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영점이 맞지 않은 총으로 정확하게 겨냥해서 사격을 한다면 과녁의 일정한 부분에 사격의 흔적이 모이게 된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잘못 맞춰진 영점에 의해 만들어진 사격의 흔적이야말로 김병관 작가의 회화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회화는 음악이나 문학처럼 시간에 얽매이는 매체가 아니다. 회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는 바로 순간의 충격이다. 그림을 보는 한 순간 느껴지는 충격 그리고 그 충격은 내 삶의 모든 경험들과 이어진다. 그것은 물리적인 시간을 매개로 일어나는 감상의 효과가 아니다. 그야말로 바라보는 그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회화는 여전히 도전하고 실험해야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 회화는 관객들을 설득하여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어디론가 향하는 문이다. 작가의 손을 떠난 그림은 더 이상 변명과 설명의 여지가 없다. 그 문을 통과하면서 뒤섞여 버리는 우리의 기억과 경험들로부터 생겨나는 균열. 작가는 이 균열의 발견이야말로 회화의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자문한다.


작가는 회화는 캔버스와 색, 즉 재료가 만나 발생하는 사건이자 사고라고 말한다. 그 사건들은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고 또한, 계획할 수 없다. 우리가 당장 우리앞에 놓여질 사건들을 전혀 알 수 없듯이. 김병관 작가는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만들고 그 불편함을 통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유도한다. 그러나 그는 그 긴장감을 곧 호기심으로 혹은 사유의 단초로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바로 그의 매일매일의 삶에 대한 명상과 그 명상을 통해 발견되는 리듬감에서 비롯된다. 그가 유화 보다는 아크릴을 즐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충만한 리듬감을 즉각적을 표현하는데에는 아크릴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늘 2017년 4월 9일의 밤은 절대 다시 올 수 없는 날이며, 그 날의 그 기분과 리듬은 오직 그 날만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작가가 느끼는 매일매일의 리듬감이야말로 작가의 회화 전체를 관통하는 또 다른 편안함과 지속적인 감상을 유도하는 매력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언제든지 또는 얼마든지 그의 의도적인 불편함을 승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 아닐까.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