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강재형 기획초대전 "TEXTOGRAM"
전시기간: 2016년 2월 19일 ~ 3월 8일
전시 오프닝: 2016년 2월 19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텍스트의 향연, 텍스토그램 (TEXTOGRAM)


텍스트는 인간의 사유를 가시화 시키고 현실화 시킨 결과물이다. 따라서 인문과학은 텍스트의 연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사고의 결과들을 기호화하고 그 기호들을 코드화 하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게 되면서 텍스트는 이제 연구와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단순히 사고를 현실화시키는 작업 이외에 오히려 텍스트가 사고를 지배하는 고정적인 개념을 형성하게 됨으로써 텍스트는 거대하고 강력한 지배체계를 갖게 되었다. 우리가 사유하고 소통하는 매 순간마다 텍스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SNS상의 소통은 텍스트 그 자체라 할 만큼 텍스트에 완벽하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텍스트는 우리의 사고체계뿐 아니라 삶의 패턴과 동시대 문화의 흐름까지 담을 만큼 그 자체 함의의 폭이 광대하다.



텍스트는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표출하는 한편, 같은 언어와 사고체계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규합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이기도 하다. 동시대의 생각들을 반영하고 그에 따른 행동강령들을 생산해내는 텍스트는 그 위용만큼이나 악이용되어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기호로서 텍스트는 같은 문화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칙이 작용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텍스트의 의미를 읽을 수가 없다. 이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합의라는 부분에서 텍스트는 여러가지 의미로 확장되고 다중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즉, 텍스트는 일차적으로 보여지는 텍스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텍스트를 수용하는 다양한 사고의 주체에 따라 의미는 전혀 다르게 수용된다. 그리고 그 수용된 다양한 의미로 재생산된다. 물론, 생산되자마자 퇴색해 버리는 텍스트도 있지만 재생산이 끝나지 않는 텍스트들. 즉, 불멸의 텍스트로서 예술은 컨텍스트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그 의미가 재해석되고 그 결과에 의해 재생산된다.



강재형은 텍스트홀릭이라 할만큼 이와같은 텍스트에 집착해 온 작가다. 특히 그에게 문자(글)은 가장 기초적이지만 가장 폭넓은 연구 대상이었다. 문자의 탄생과 변화 발전 그리고 그 문자가 지니고 있는 변화 무쌍한 의미들. 그는 그 의미들을 이미지 텍스트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 낸다. 이는 기존의 텍스트를 재해석한 텍스트의 재생산이라기 보다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합쳐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창작 행위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작가는 텍스트(문자,글)가 던지고 있는 의미와 그 뒤에 감춰진 스토리들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읽어내고 표현한다. 텍스트와 합쳐지는 컨텍스트 역시 자신의 경험이 토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에 관한 그의 태도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은 생각한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삶은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살이는 의도한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살이는 의도한대로 되는 게 아니다.’ (작가노트 중.)

무엇보다도 다중적 의미에 대해 그리고 결정될 수 없는 개념의 지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역설과 의미전달의 반전. 작가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전략이다. 예를들어, 훈민정음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창제된 문자다. 문자 그 자체는 지극히 추상적인 텍스트다. 그것으로 문장을 만들어 사회현상을 대변하고 표현하게 되면서 소통의 매체로서 기능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훈민정음의 글자 원본을 촬영하여 모든 글자들을 겹쳐놓았다. 추상적인 기호로서 텍스트가 추상적인 이미지로 전환되었다. 그럼으로써 훈민정음이 지니는 역사성과 의미들은 이미지 텍스트 뒤로 숨어 버리게 된다. 이는 일종의 텍스트의 강제적 의미 전달에 대한 역설적 대응이기도 하다.


작품 ‘훈맹정음 108’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 체계다. 작가는 이 108개의 점자들을 촬영하여 각각의 점자들에 색채를 입혀 겹쳤다. 그 결과 이중성의 이중성이라고 할만큼 이미지 자체 역설적인 개념이 성립되었다. 즉, 시각장애인은 볼 수 없지만 읽을 수 있는 점자가 읽을 수 없게 되고,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은 각각의 색채를 지니는 점자들. 읽을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볼 수 있지만 읽을 수 없는 점자의 역설이다. 이는 소통의 부재 혹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경계에 놓여진 이중적 잣대들에 대한 메시지로서의 역설이기도 하다.



본 전시의 타이틀은 ‘텍스토그램’이다. 로마자로 옮기면 Textogram이다. 풀어보면 Text to Gram 이다. 텍스트가 이미지로 향하는 의미다. 이를 작가 특유의 겹치기를 통해 만들어진 말이다. 또한 우리는 이 텍스토그램 속에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Utopia가 숨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엄밀히 말해 텍스토그램은 어휘의 느낌상 Text(U)to(pia)gram 으로 읽혀진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부분이다. 문자와 그림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늘 한결같이 이상향으로 존재하는 곳. 텍스토피아그램이다. 이는 흡사 회랑을 거닐며 철학적 개념을 이야기 하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대화 중 에로스에 관한 이야기처럼 문자로서 텍스트와 이미지로서 텍스트 간의 향연(Symposium)과 같다.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결합. 문자의 이미지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이 텍스트 향연 속에서 진정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는 현 시대에서 사건과 사고의 단순한 현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까지 같이 보고 읽을 수 있는 객관적이며 복합적인 판단력과 사고를 증진 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볼 수도 있을 듯. (글. 임대식,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