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Jooil Yoon "Empty Place"
Date : Nov. 30th ~ Dec. 17th, 2019
Opening : Nov. 30th, Fri. 6 pm
Place : Salon Artertain (Yeonhi-dong, Seodaemungu)
Curator : Heeseung Hwang (+82 (0)2-6160-8445)

 

허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자리


‘하지 않기’, 우주의 근본을, 허무로 정의하기도 하는데. 그 허무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행위가 바로 하지 않기, 무위다. 보통 허무라고 하면, 허무주의로 통하는, 일종의 합리적 이성의 진리가 가치 없음으로 전락하면서 의미상실로 대변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허무는 지극히 정신적인 활동으로서, 마음을 가장 자연스럽게 놔둔다는 의미로, 없음의 의미에 가깝다. 그렇다고, 허무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 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 말 그대로 자연이다.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에너지. 그것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에너지다. 삶과 죽음의 의미도 어쩌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듯. 지구가 하루를 자전하고, 일년을 공전하는 그 완벽한 질서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거기에는, 그 자연의 법칙에는 단 하나의 오차가 있어서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매일의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했던 행동이 우주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내게 온 상황이라는 것. 좀, 과한 말일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자연과 가깝게 만드는 것. 무위고, 허무다. 무위로 못 다스릴 것이 없다는 말. 조금 이해가 된다.


윤주일의 작업은 결국, 아무것도 없는 상태, 아니지. 그냥 누구나 다 아름답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을 만드는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림. 그러나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내야 하는 작업. 그 둘 사이의 간극에서 윤주일은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그 인생의 노을이 떠올랐다는 것. 아무도 인위 하지 않은 그 자연만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가장 완벽한 질서의) 아름다움. 그에게는 그것을 재현 하고 싶어.. 아니, 가장 그 자연에 가까운 무위를 가지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리는 (작위)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흘러가듯, 불이 피어 오르듯 그렇게 자신의 작업을 흘려 보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에폭시는, 건축현장에서 다양하게 쓰이는 마감재다. 강산이 변하기 직전 동안, 그의 화면에 쏟아 부었던 재료다. 도저히 자신의 의지를 에폭시에 담을 수 없으니, 막연하게 때로는, 작위적으로 부었던 것 같다. 세랜디피티 (serendipity). 뜻밖의 기쁨.


그는 그것을 찾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뜻밖의 기쁨은 말 그대로, 뜻밖이어야 한다. 절대 의식적일 수도, 인위적일 수도 없다. 과연, 우리가 사는 동안 그렇게 뜻밖인 기쁨을 몇 번이나 맞이하게 될까. 물론, 작가는 매번 뜻밖에 드러나는 에폭시의 우연의 효과를 보면서, 그 뜻밖의 것들을 많이 느끼고, 감동하고, 당황해 했을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뜻밖의 기쁨일까. 욕망이 깃들이는 수 없이 많은 삶의 순간들… 그때의 그 찬란했을 우리의 삶들이 과연 뜻밖이었을까.


작가는 이제 그릴 수 있는 것. 아니, 막연하게 에폭시를 붇고, 뜻밖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 말고, 그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생각이 이어지는 대로 그려지는 그림과 그 그림의 한쪽을 담당하게 된 에폭시. 진정, 우리는 그것을, 그의 욕망의 빈자리를 채우는, 자연 그 자체. 허무를 찾는 무위의 드로잉이라고 하겠다.


결핍은,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작가가 도를 닦고, 명상 하듯이, 그린 작업들 역시, 그의 결핍을 채우는 과정이었다. 어딘가 항상 비어있는 것 같은 불안들.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진절머리 나는 외로움들. 결국, 그의 선 하나하나, 그리는 행위 자체. 그렸다기 보다는, 버렸을 것이 훨씬 더 많은 무위의 드로잉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기 보다는, 우리의 존재 이전에 무엇이든 있었고, 있어야만 했을 것 같은 순간을 그린다. 아니, 그랬을 것 같은 그 때를 기억하고자, 화면 빈 곳을 하염없이 채우고, 채운다. 끝내 우리의 결핍에, 상처에 두꺼운 반창고를 붙여 더 이상의 오염을 없애듯이. 윤주일의 무위 드로잉은 욕망의 빈 자리.. 허무를 쫓는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