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자 기획초대전

"평면의 기억"


2017년 3월 3일 ~ 4월 24일


평면의 기억, 무위의 회화


그림이 그림일 수 있는 여러 조건이 있다면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작가의 행위, 즉 그리기일 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결국, 인간의 사고와 경험 속에서 창작하고 즐기게 되는 것. 그것이 예술을 지배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가장 인간적인 소통의 도구이자 고등한 정신활동의 전유물이다. 그 다음 그림일 수 있는 조건 중 중요한 부분이 바로 공간이다. 즉, 그림으로서 점유하고 있어야할 공간이야말로 그림에 있어서는 실제적 필요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림과 같은 시각적인 자극과 감상이 기저를 이루고 있는 예술이라면 특히나 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 다음 무엇을 어떻게 그렸는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이 그림이 그림일 수 있는 조건들을 이루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창작의 주체와 그 주체에 의해 점유된 공간이 확정되었다면 일단, 그림이 지녀야할 기본적인 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그 창작의 주체가 되기 위한 여러가지 세세한 조건이 또한 중요한 부분이겠고, 점유된 공간에 대한 해석 역시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얽혀있겠지만 물론, 무엇으로 그렸는가 하는 재료의 문제가 또 하나의 중요한 회화의 성립 조건으로 대두되겠지만 우선 그림, 회화는 주체와 점유된 공간, 즉 작가와 평면으로 이루어지는 시각예술이다. 아무리 점유된 공간이 여러 모양을 띈다고 하더라도 3차원의 세계에서 그리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평면이기 때문에 점유된 공간을 평면으로 통칭할 수 있다. 물론, 입체를 다루고 있는 시각예술에 있어서 점유 공간의 문제는 살짝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어찌되었든 회화에 있어 평면의 문제는 회화의 성립 조건에 아주 밀접한 것은 사실이다.

허미자 작가는 블랙과 블루의 추상 표현적 시기를 거치면서 평면성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체득했다. 이후 자신 내면의 심상을 최소한의 행위와 묘사를 통해 대상에 투영하고 있다. 즉, 그의 회화는 보는 행위, 그리는 행위 이전에 느끼는 행위, 깨닫는 행위가 우선시 된다는 말이다. 1990년대 후반쯤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하는데, 작가는 거의 7년 정도 검은 색으로만 그렸던, 말그대로 블랙시대를 보냈다. 막연하나마 작가에게 블랙시대는 가장 처절한 자기 검열의 시대였으리라 짐작한다. 작가에게 블랙은 모든 색들의 집합으로서 순수하며 또한, 모든 색을 없애버리는 파괴력을 가지는 가장 순수하며 강력한 색 그 자체였다. 작가의 평면성에 대한 탁월한 해석 능력은 아마도 이 시대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하다. 그리고 블루시대로 이어지며 자기 검열 보다는, 또는 외부의 자극과 관계성보다는, 자기 내면의 심상을 느끼고 깨닫는데 집중하게 된 듯 하다. 그리고 가장 단순하면서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닮은 이미지들을 만난다. 그것이 오동나무 나뭇가지가 되었든 이파리나 열매가 되었든 자신의 삶의 깨닮음들을 툭하고 던져 놓을 수 있는 대상을 만났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적어도 작가의 무위적 회화를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무위는 동양철학의 아주 핵심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쉽게 우리의 일상속에서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흔히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법은 꼭 지켜야할 규범이고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삶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절대적인 약속으로 여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법은 우리의 삶을 규범화 함으로써 구성원들 서로에게 지키지 않으면 오히려 큰일 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성의 완성은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롯되는 것이다. 무위란 바로 이렇게 그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다. 인간성 그 자체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애초의 믿음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 사회적 관계속에서 자연스러움 그 자체를 믿고 따르는 것 내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무위이며 이는 나를 혹은 우리를 혼란과 스트레스로부터 가장 자연스럽게 지킬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허미자 작가의 회화는 대상을 작위적으로 그리기 보다는 그의 내면에서 스미는 다양한 깨달음들을 붓가는데로 그린다. 내면의 자연스러움과 표현의 자연스러움이 만나게 되면서 완벽한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과정 중 한 순간을 담게된다. 작가는 모든 것들은 처음과 끝으로 재단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서 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시간의 연속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에게 시간은 미래로 향하는 직선적인 시간보다는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선회하는 나선적인 개념이다. 다양한 기억들이 만들어내는 내면의 심상들은 그 나선적인 시간의 연속성 위에 존재함으로써 이를 투영하고 있는 대상들은 그 재현의 경계가 모호해 진다. 그로 인해 그의 회화는 보다 더 자연 그 자체에 가까워진다. 작가는 사실적으로 대상을 묘사하고 재현하는 일루전보다는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대상 그 자체가 의미하고 지시하는 것 보다는 개념화되고 평면화된 대상 이면의 것들. 즉, 작가는 우리 내면의 자연스러운 것들에 집중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