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Grungyone 기획초대전 "Lucid Nightmare"
전시기간: 2016년 6월3일 ~ 6월 21일
전시 오프닝: 2016년 6월 3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악몽, 캘리포니아의 혈흔 (Nightmare, The Bloodstain for California)


1970년대를 기준으로 미국 미술계에서는 관객들의 시선을 다시 미술로 되돌리기 위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듯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던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때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중심적 개념이 바로 포스트 혹은 트랜스와 다원주의였다. 그 중 다원주의는 미국 서부의 중심이자 이민 문화의 중심인 캘리포니아에서 쉽게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에서는 여성주의 미술운동을 필두로 실험적이고 비판적인 예술활동이 진행되었다. 그 즈음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인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캘리포니아에 소개되면서 이민 문화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다원화 되어 갔다. 수많은 민족과 문화가 동시에 공존하는 지역으로서 캘리포니아는 단일한 예술의 흐름을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나 새롭고 변화 무쌍한 예술적 원시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Grungy는 이러한 캘리포니아의 미술 환경 내에서 격렬하게 그래피티로 활동하던 작가다. 물론, 원래는 미술 아카데미 출신의 아티스트 지망생이었지만 보다 더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 그래피티에 매료되면서 이십대 전부를 길거리에서 스프레이를 뿌렸다. 때로 구속되어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할 정도로 그에게 그래피티는 저항이자 힐링의 대명사였으며, 그의 젊은 그 자체였다.

책임이 하나씩 생길수록 나의 길은 멀어지고, 나의 모습은 흐려진다. 보이는게 많으면 많아질수록 피하게 되고, 보이는 것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힘이 든다. 머리가 계속 커지는 나는, 나만의 기준이 생기고, 고집도 생기고, 이기적인 면들이 많아지는 나의 색은, 어느 때 보다 뚜렷하다. 밝은 색을 표현하는 나는 가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색을 통해 누구나 나의 모습을 알 수 있다.
현실이 힘든 것은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가식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들은 웃으며 살고 있지만 너무 힘들다. 그래도 웃어야한다. 웃어야지, 웃는다
세상에 맞춰 달라고 하는 간절한 나의 현실은 악몽이다.
- Grungy

Grungy의 회화는 이렇게 그래피티의 정신과 기법에서 시작된다. 색으로 일기를 쓰듯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고 다시 그것을 지우고 단순화 하고 다시 그 위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래피티의 생명은 속도다. 그의 회화 역시 기본적으로 속도감이 느껴진다. 방향성과 속도감은 우선, 그의 화면에 큰 흐름과 구도를 구성하고 있다. 작가 노트에서도 이야기 했듯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로부터 도망도 쳐보려 했고, 지금은 그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며 가식적이지 않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을 강렬한 캘리포니아의 색채로 담고 있다.


이민 1.5세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거친 질풍노도의 시기를 음악으로, 그림으로 버텨 온 젊은 Grungy는 여전히 거칠고 황량한 사막속에서 홀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만큼 앞으로의 그의 메시지가 너무나 기대된다. 2년전 여읜 어머니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자 하는 그의 야심도 야심이지만 태어나 처음 자신의 모국에 선보이는 강렬한 캘리포니아의 추상회화는 그 선명한 색이 남다르다. 선명한 색 이면에 있을 그의 슬픔과 그리움이 베어난다. 꼭 캘리포니아의 화려한 환경속에서 남모르게 흘렸을 그의 핏자국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그리고 깊고 무겁게 가슴을 파고 들어 온다. 그의 혈흔이야말로 캘리포니아 원시림에서 굳건히 꽃을 피울 자양분이 될 것이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