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정고요나 기획초대전 "기억의 목적"
전시기간: 2016년 4월 1일 ~ 4월 20일
전시 오프닝: 2016년 4월 1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기억의 목적 :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은 항상 내가 ‘나’ 인것을 확인시킨다. 이는 어제도 내가 있었고 내일도 내가 있을 것이라는 의식의 연속성이다. 이 의식의 연속성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지금 나는 존재하고 있다는 확실성을 갖게 한다. 또한, 기억은 물리적인 시?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신체로부터 독립적이다. ‘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 기억의 연속적 의식과 이 의식을 담고 있는 신체라고 했을 때, 신체는 끊임없이 물리적 변화를 갖는 반면 기억(의식)은 망각의 이미지화를 반복하면서 모든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버린다. 기억은 과거를 증명하기 보다는 현재를 설명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은 망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다른 기억에 흡수되거나 무의식으로 흘러들어간다. 따라서 현재의 ‘나’를 설명하는 기억들은 기억의 덩어리에서 가장 뾰족하고 날카롭게 튀어나온 것들이다. 거꾸로 서있는 원뿔의 가장 뽀족하고 날카로운 꼭지점이 닿는 찰나 그것이 현재를 설명하는 기억이다. 그리고 그 꼭지점은 바로 무뎌지면서 더 날카로운 기억들에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그렇게 기억은 거대한 기억의 세계, 즉 의식속으로 침잠한다.


정고요나 작가는 그리는 행위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론을 찾는다. 찾는다기 보다는 만들어 낸다라는 표현이 더 잘 맞을 듯 하다. 생각하는 방법론으로써 작가는 일상에서 만나는 대상이나 장면을 무심하게 재현한다. 대상에 대한 밀도있는 설명보다는 대상 이면에 있는 자신의 기억(의식)을 그린다. 매 순간 만나는 장면이나 대상들 중 자신의 의식을 자극하는 장면이나 대상들에 멈춘다. 생각하는 방법, 그 대상이나 장면과 연동하는 기억이 선명하든 희미하든 작가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생각의 흐름을 그린다. 작가는 생각하는 다양한 방법론 중 하나로써 이번에는 기억의 목적을 찾는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통로로서 기억은 나와 타자와의 관계의 혼합이기도 하다. 이는 일종에 나의 기억과 나에 대한 기억의 혼합이다. 이 혼합된 기억을 들여다 보면서 작가는 어쩌면 주변에 대한 사색의 깊이를 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대상을 인화지에 담듯이 작가의 눈은 자신의 기억과 감성을 자극하는 장면에 멈춘다. 한밤중에 지나치며 슬쩍 바라봤던 놀이터, 골목길 어귀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서있는 스쿠터, 조명을 받고 서있는 여인의 뒤모습, 무심하게 놓여있는 화분… 언젠가 한번은 봤을 법한 너무나 흔한 장면들이다. 과연 작가가 시쳇말로 꽂힌 이 장면들에는 우리의 어떤 기억들이 혼합되어 있을까. 이 장면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기억의 목적은 무엇일까.


한밤중의 놀이터는 뭔가 멜랑콜리하면서 불안하다. 거기엔 남몰래 입술을 훔치던 첫사랑의 기억과 함께 성장통으로 시달리던 청소년기의 아픈 기억이 같이 있다. 스쿠터의 주인공을 기다리다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이미 집으로 들어가 버린 그 혹은 그녀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주인을 잃은 듯한 화분을 통해 이별의 슬픔을 달래 보았던 기억도. 누군가의 뒷모습에 흠칫 놀라 앞으로 뛰어가 얼굴을 확인해 봤던 기억까지. 정고요나의 대상들은 평범한 일상의 기억들이다. 그러나 작가의 기억은 우리의 그것과 다소 차이가 난다. 우선 공간감과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시선이다. 여백의 탁월한 운용이다. 또 하나 기억에 관한 작가의 집요한 스토리텔링이다. 이를 위해 그의 붓질은 무심한 듯 날카로운 긴장감을 유지한다. 기억은 그렇게 그의 그리는 행위를 통해 나와 우리를 이어준다. 이 지점, 작가의 생각하는 방법론이 가시화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억은 자극이다. 우리로 하여금 늘 생각하고 대상에 반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이 기억이다. 내가 당신이라는 독립적 개체, 의식적 개체를 인식하게 하는 것 역시 기억의 몫이다. 우리의 의식안에 존재하는 모든 기억은 나와 당신을 구별할 수 있는 근거들을 만든다. 또한, 기억을 통해 나와 당신이 소통할 수 있으며 때로는 뿌리 식물처럼 정신적으로는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조형언어, 즉 생각하는 방법을 통해 단순히 기억의 목적을 찾기보다는 이와같이 기억의 원천을 연구하는 듯 하다. 평범한 일상속에 담겨있는 예술적 모티프. 생각의 흐름을 쫓는 단서로서의 기억. 그 둘이 이어지는 순간 작가는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언제 멈춰야 하는지 날카롭게 고민한다.


나를 그리고 당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모든 기억들. 그 기억의 목적이 다시한번 우리가 살아왔던삶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만드는 것이라면 어쩌면 작가의 기억과 그 기억을 표현하는 방법론을 쫓아 간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순간에 대한 또 다른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우리의 기억속의 감정들은 그 폭풍치는 듯한 감정적 동요가 무뎌졌듯이.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