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윤두진 기획초대전 "Guardian Appearance"
전시기간: 2016년 3월 11일 ~ 3월 29일
전시 오프닝: 2016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감정의 유기적 변이와 진화 : 가디언의 탄생


흔히들 하는 말로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은 주로 외부의 자극에 대한 작용이거나 내부적인 의식의 혼합이다. 감정의 가장 큰 특성은 지향적 의식이라는 것이다. 대상으로의 지향. 즉, 감정은 자극의 원인인 그 대상을 쫓는다. 예를들어 신체적 고통이나 쾌락을 통해 불쾌하거나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 우린 반사적으로 그 원인의 대상을 찾게된다. 그리고 그 원인에 따라 감정은 기억이나 경험과 같은 의식의 또 다른 국면으로 변화된다. 따라서 감정은 외부의 자극에 대응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초의 의식 행위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하다.


인간의 정신활동을 기계론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은 감정은 신체의 생리적인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눈물이 나오니까 슬픈 감정이 생기게 되고 웃게되면 즐거운 감정이 생겨난다는 논리다.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은 이러한 경험을 해봤을 법 하다. 물론, 단 한번도 안해 봤을 수도 있고. 반대로 감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다. 행복감, 즐거움, 성적 만족감, 사랑 등으로 인해 생성되는 호르몬들은 신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는 신체의 자연치유능력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공포, 수치심, 분노 등의 감정이 심하면 신체는 급격히 상하게 된다. 물론, 이때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다른 호르몬이 분비되기는 하지만. 따라서 감정은 외부의 물리적인 자극이나 내부의 심리적인 자극에 작용하는 최초의 의식행위다. 일종의 방어와 보호 본능의 기반을 형성하는 의식이다.


판타지적으로 이해하자면, 윤두진의 조각 즉, 가디언은 이러한 감정이 응축되고 켜켜이 쌓여지면서 탄생된 듯 하다. 응축되고 단단해진 감정들의 유기적 변이와 진화의 결과다. 그의 가디언은 다양한 감정의 결정인 관계로 여러 폭발적인 감정으로부터 우리의 정신을 보호하고 건강한 감정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신체를 수호한다. 신체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기관이다. 따라서 인간은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위해 신체를 단련시키고 필요하면 진화를 위한 변이를 일으키기도 했다. 윤두진은 신체의 변이와 진화에 천착해 왔다. 몸의 보다 강력한 보호기능을 위해 사이보그로 진화시키기도 했고, 팔을 특화된 무기로 변형시키기도 했다. 때로 팔은 날개가 되기도 하고 커다란 껍질(갑옷)이 되어 몸을 보호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품을 위해 작가는 여전히 모든 공정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작업한다.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작업과정을 중요시한다. 윤두진의 조각에서 감정이 응축된 신체와 판타지에 자주 등장하는 가디언이 떠오르는 건 작가의 이러한 철저한 작업 과정의 결과인 듯 하다.


다시 언급하자면, 지향적 의식으로서 감정은 감정을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향한다.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경험과 기억으로 축적되어 판단과 결정의 기준이 된다. 이성적 판단과는 지점이 살짝 다른 판단으로서 감정적 판단은 주관적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더 창의적일 수 있다. 윤두진의 조각(신체)이 가디언으로 비춰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감정적 판단에 있어 절제와 갈무리에 탁월한 작가의 성향이 반영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의 작업이 외형적인 단단함과 신체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집중되었다면 최근 작업은 보다 더 유기적인 변형이 진행된 신체다. 이는 외형적인 단단함 뿐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된 몸(신체)이야 말로 몇 갑자의 무공 수행을 견뎌낸 강력한 보호 기관이다라는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는 듯 하다. 이러한 감정의 유기적인 변이와 진화를 입체적으로 가시화한 윤두진의 신체를 통해 우리의 감정적 안정과 창조적 판단을 수호하는 가디언의 탄생은 이미 예고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몸(신체)은 우주를 담는 그릇이다. 우주는 강력한 인력들이 작용하면서 존재한다. 인력은 단순히 당기는 힘이라기 보다는 분열된 에너지를 어떻게 집중시키냐는 것이 중요한 이른바 에너지의 표출 방식이다. 단 한순간도 밀어내는 힘 즉, 부정적인 에너지가 발생되지 않는다. 분노와 같이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삶을 악화시킨다. 우주의 에너지를 담은 그릇인 신체는 밀어내는 힘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발생하게 되면 그것을 치유하고자 노력한다. 대부분의 부정적 감정이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기 내부에서 나오는 감정들로 대체하는 힘 즉, 명상과 강렬한 자기 안정 의지의 발현들로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다.


윤두진의 조각(신체)이 상징하는 바 가디언은 우리의 감정이 이렇게 치유하고 극복되는 과정에서 발현된다. 이는 그의 완벽에 가까운 조형적 언어가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울증의 문제는 마냥 슬프다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결여된 감정 상태라는 점이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즐거울 수가 없다. 오히려 즐거울 수 없다는 것으로 인해 더욱 더 우울하다. 우울은 심신을 쇄약하게 만들어 삶에의 욕망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삶에의 의지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극한까지 치닫게 만든다. 윤두진의 조각(신체)은 늘 우리를 바라본다. 단순히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단단한 갑옷 뒤에 숨겨진 가장 인간적인 시선은 어쩌면 우리의 삶에의 의지에 대해 묻고 있는 듯 하다. 기쁜일에 대해서는 기쁨을 슬픈일에 대해서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우리에게 안정된 감정선을 유지해 준다는 것. 그의 가디언이 시선 앞에 서며 한번쯤 다짐해 본다. 즐거운 일에는 더 크게 기뻐하고 슬픈일에는 더 크게 슬퍼하자고.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