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조문기 개인전 "상머리에 도상"
Date : 17th, Oct. ~ 09th, Nov., 2025
Opening : 17th, Nov.,, 2025 (Fri.) 6 PM
Place : Artertain (Yeonhi-dong, Seodaemungu)
Curator : Heeseung Hwang (+82 (0)2-6160-8445)

 

상(Table): 관계의 확장, 현대의 신화


인간의 관계는 많은 부분 ‘상(Table)’ 위에서 시작되었다. 식탁, 회의용 테이블, 혹은 제의의 제단까지 - 우리가 마주 앉았던 모든 자리는 단순한 생활의 도구라기보다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온 구조를 상징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상은 물질적이되 동시에 상징적이다. 우리는 그 위에서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며, 때로는 암묵적으로 누군가의 권력을 인정하고 그것을 교환하기도 했다. 상의 모서리, 즉 상머리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뻗어 있는 거리만큼 인간의 관계는 늘 그 거리만큼의 긴장을 유지해왔다. 그 위에서는 대화가 오가고, 결단이 내려지며, 또한 권력이 배분되기도 했다. 상은 그렇게 공유와 분리, 친밀함과 단절이 교차하는 무대였다.


이러한 이유로 테이블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의 대상이 되어왔다. 공동의 이해가 형성되는 대화의 공간으로서의 긍정적인 사유에서부터, 규율과 권력이 재배치되는 사회 제도의 축소판으로서의 의미, 혹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과 약속이 시작되는 출발점으로서의 역할까지, 상은 인간의 관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누가 상의 가장 윗자리에 앉는가, 누가 말을 시작하고 누가 듣는가 - 단순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상에서의 위치와 역할은 인간관계의 질서와 감정의 위계를 형성할 수 있는 구조로 빠르게 발전하고 진화할 여지를 지니고 있었다.


조문기 작가는 바로 이 ‘상’의 철학적 본질을 시각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에게 상은 감정이 교차하는 장이자 관계의 서막이 펼쳐지는 무대이며, 인간의 욕망이 포개지는 상징적 평면이다. 그리고 상머리는 그 관계의 뾰족한 지점, 즉 긴장이 집중되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자리다. 그는 상머리에 앉은 존재들을 통해 사회적 구조와 가족, 권력과 단절,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위트와 아이러니를 들여다본다. 상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와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고, 부조리하게 뒤엉키며, 다시 반복된다. 작은 사회로서의 가족은 그렇게 탄생하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권력의 자리, 즉 상머리의 주인이 있었다.


작가의 화면에는 이러한 구조가 은유적으로 배치된다. 가족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각자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상은 더 이상 소통의 매개라기보다 단절하기에 적합한 또 다른 상징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장면 속에는 언제나 작가 특유의 위트가 스며 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화면 밖의 우리를 향해 리모컨을 들고 있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 익숙하고도 낡은 오브제는 이제 더 이상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선택’과 ‘통제’의 욕망을 대변한다. 리모컨은 상머리의 주인이었던 가부장의 잔재이자, 통제력을 잃어버린 시대의 상징과도 같다. 조문기는 그 장면을 통해 권력의 허무한 반복이 더 이상 무게감이나 진지한 고민을 가질 수 없음을 희극적으로 드러내며, 인간관계의 무게가 지나치게 가벼워진 오늘의 현실을 비틀어 보여준다.


그의 회화는 사회적 부조리를 폭로하는 리얼리즘이라기보다, 그것을 기원을 알 수 없는 현대적 신화의 언어로 번역하는 회화적 연극에 가깝다. 그의 작품 〈일월오봉도〉에서 그는 역사 속 왕권의 상징이었던 해와 달, 그리고 다섯 봉우리를 가진 산 - 즉 세상 만물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이미지를 사냥꾼과 개의 우화로 치환한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사냥꾼 뒤로 보이는 해와 달은 개가 달을 삼켰다가 다시 뱉으려는 찰나의 장면이다. 월식을 상징하는 붉은 달을 물고 있는 개는 곧 원래의 달을 뱉어내려 안달하는 듯한 모습이다. 작가는 이 일화를 통해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모하고 자기파괴적인지, 그리고 신화적 구조 속에서 그 욕망이 어떻게 반복적으로 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일월오봉도’라는 도상은 그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의 표상이자 동시에 스스로의 꼬리를 물고 도는 우로보로스적 순환의 상징이다. 사회적 권력의 작동은 결국 자기소멸의 반복이며, 관계의 자기복제로서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는 과정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무거운 사유의 구조를 작가는 언제나 위트와 가벼움으로 전환시키려 한다. 그의 회화에는 냉소가 아니라, 세계를 견디는 웃음이 있다. 유머는 그에게 회피가 아니라 윤리의 형식이다. 그는 세상을 고발하기보다 살짝 비틀어 놓음으로써,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균열의 틈새를 드러낸다. 그렇게 그의 화면 속 일상의 장면들은 제의적이면서도 희극적이며, 동시에 인간 존재의 내밀한 슬픔을 재채기처럼 숨기지 못한다.


이러한 그의 사고는 오래된 신화로 옮겨진다. 그러나 그에게 신화는 고대의 전설이 아니라 현대의 심리적 풍경이다. 그는 고전의 상징들을 일상의 동물들 - 개, 돼지, 닭 - 로 바꾸며, 신화의 권위를 해체하고 오늘의 생생한 현실로 끌어온다. 그에게 신화란 과거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새롭게 만들어내는 감정의 이야기이다. 말하자면 오늘 하루의 감정이 어제와 다르다면, 그 자체로 한 인간의 ‘그날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그의 회화 속 세계는 매일 다시 쓰이는 ‘하루의 건국신화’다. 가족의 식탁, 사회의 회의 테이블, 혹은 기억의 무대 - 그 모든 곳에서 인간은 관계를 맺고 깨뜨리며, 다시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갈 수밖에 없다.


작가가 상상하는 〈상머리에 도상〉은 결국 그러한 되풀이의 풍경을 시각화하면서 시작된다. 상머리 위에 놓인 도상들은 개인의 기억, 사회의 구조, 관계의 상징들이 서로 얽히고 비틀리며 생성되는 이야기들이다. 작가는 이 묘한 혼종의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한 서사를 새롭게 읽어낸다. 그의 회화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묘사보다는 그것을 하나의 유머와 신화의 언어로 치환하는 회화적 사유의 실험이다.


결국 상(Table)은 조문기에게 세계의 축소판이자 관계의 단면이다. 우리는 그 위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부딪히며, 다시 이해한다. 상머리에 앉은 자는 권력의 주체라기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관계의 증인이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도상들은 우리 각자의 이야기, 욕망, 그리고 신화의 잔해들이다. 그의 회화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 매일 앉는 그 상머리에서, 오늘은 어떤 신화를 다시 쓰고 있는가?” 이 질문은 곧 “나는 지금 이 테이블의 어디에 앉아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우리 하루의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사유의 단서이기도 하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