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 최은숙 개인전 "익숙한, 익숙해지지
않는"
Date : 14th, Nov. ~ 30th, Nov., 2025
Opening : 14th,Nov., 2025 (Fri.) 6 PM
Place : Artertain (Yeonhi-dong, Seodaemungu)
Curator : Heeseung Hwang (+82 (0)2-6160-8445)
건조한 일상에서 익숙한 경계까지
일상의 풍경은 늘 우리 주변에 있어 왔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바라본 적은 극히 드물다. 말 그대로 일상은 너무나 반복적이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을 일부러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익숙함’이라는 것이 과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용하는 것인지, 혹은 우리의 기억에 의해 작용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최은숙의 회화는 이러한 익숙함 속에 담겨 있는 낯선 무언가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즉,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보지 못하는 세계’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보는 행위’와 바라봄으로 인해 생겨난 ‘익숙함’ 사이에 놓인 아주
얇은 막, 즉 감성적 혹은 감각적 경계를 표현한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하고 늘 거기에 있었던 것들로서 무심히 지나쳐 왔던 일상의 장면들이다. 식물, 담장, 창살, 화분, 요트가 떠 있는 바다의
풍경 등은 너무나 단편적인 장면이지만, 그것들이 작가의 화면으로 옮겨지면 느닷없이 낯선 무언가를 감각하게 된다. 그의 화면은
그 익숙함 속에 숨어 있던 시간의 결, 감정의 잔향, 그리고 보는 행위의 사유적 구조를 보여준다.
독일의 한 철학자는 그의 저서에서 미의 본질을 ‘무목적적 합목적성’으로 정의한 바 있다. 아름다움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목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떠한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일 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해나 필요 가치가 아닌,
감각과 이성의 자유로운 조화 속에서 경험되는 미적 판단의 순간이다. 작가의 회화가 지닌 건조한 일상의 평온함과 그 속에 녹아
있는 절제된 감정이 바로 이러한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의 화면에는 어떠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서사나 설명의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무목적적인 구조 속에서 우리는
묘하게도, 너무나 익숙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대상들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작가의 대상들이 왜 거기에 있어야 했는지, 그 타당한 목적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단조로워 보이는 회색빛 배경, 반복되는
격자, 무심히 놓인 식물과 그림자?이 모든 것은 명확한 의미를 가지지 않지만, 서로 간의 무심한 관계 속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질서를 만든다. 즉, 작가는 ‘무의미의 조화’를 통해 시간과 기억을 초월할 수 있는 감각적 세계의 서사를 재구성한다.
요약하자면, 최은숙의 회화는 목적을 향한 묘사라기보다 순간, 혹은 찰나의 감성을 그린다.
언제나 곁에 있어 익숙했던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경계, 얇고 너무나 일상적인 경계가 되어버린 그 면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 풍경을 통해 우리는 익숙해짐으로 인해 불편했던 관계들이 사라지고, 그
경계의 얇고 나른한 감각 속에서 편안해질 수 있음을 경험한다. 그것은 마치 무목적적인 사물들이 ‘자유로운 조화’를 이루며,
감각과 이성이 목적 없이도 일시적으로 조율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즉, 진정한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인 셈이다.

이러한 익숙하고 건조한 일상들로부터 시작된 시각적 불편함, 말하자면 일종의 새로운 사고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작가의 화면 속에서
몇 개의 층위로 나뉘며 점차 해소된다. 이러한 불편함의 해소는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해답이라기보다, 다양한 감정들이 시간의
흐름 혹은 기억의 침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이기도 하다.

최은숙의 회화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확고한 감정은 ‘무심함’이다. 그러나 그 무심함은 말 그대로 공허하거나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강렬했든 잔잔했든 간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던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재들이다. 그녀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격자, 창살, 식물의 줄기와 같은 선적 구조들은 외부 세계와 내면의 감정을 분리하는 장치이자, 사고의 객관성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덧붙임 그림이다. 이 덧붙임 그림, 즉 사고의 객관적 경계는 누군가에게는 ‘미적 판단의 중간 영역’?즉, 인식과 욕망
사이의 자유로운 감각의 영역?을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색조는 사실 감정의 미세한 변화에서 비롯된다. 작가의 절제되고 건조한 듯한 붓질은 이러한 감정이 시간과
함께 응결되고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과 기법을 통해 작가의 회화는 정지된 순간을 표현하고 있지만, 실상
그 이면에는 엄청난 떨림이 존재한다. 그 떨림 속에는 지속되는 감정의 변화, 기억의 잔상, 그리고 사고를 희미하게 만들고
익숙한 사물들의 경계를 얇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시간의 진동이 스며 있다.
작가의 익숙한 대상들은 너무 오랫동안 함께 존재해 온 탓에, 시간의 흐름이 무의미해진다. 그 대상들은 현재도, 과거도 아닌
지속의 시간 속에 있다. 따라서 작가에게 회화는 바로 이 지속 속에서 감정을 정제하고 결정하는 행위이며, 시간에 의해 무뎌진
감각을 다시 불러들이는 사유의 과정이다.
결국, 최은숙의 회화는 ‘무목적적 합목적성의 회화’다.

그의 작품은 직접적인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지 않으며, 그것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감정들이
사라진 장면을 그린다. 서사적인 이야기를 그리지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되짚게
만든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질서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미적 의미를 구성하고, 그 행위 자체가 ‘감각의 자유로운 합목적성’을
이루게 된다. 그렇기에 그의 회화는 건조하지만 풍부하고, 무심하지만 치유적이다.

최은숙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일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가능해진다. 그의 화면 속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의 층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기억과 감정의 경계선을 따라 흐르는 부드러운 긴장, 그리고 익숙함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낯선
감정의 여운이다. 그의 회화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무목적적 합목적성’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발생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목적 없는 질서, 의미 없는 조화, 그리고 무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익숙한 감정은 결국 건조함을
통해 다시 낯설게 되고, 그 낯섦은 새로운 사고의 서사를 만들게 된다. (글. 임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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