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안상훈 기획초대전 "Friendly Banter"
전시기간: 2017년 8월 25일 ~ 9월 12일
전시 오프닝: 2017년 8월 25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쌀롱 아터테인 (서대문구 연희동 708-2)
전시기획: 황희승 큐레이터 02-6160-8445

 

오직 회화

회화는 가장 직접적으로 시각적 문제들에 관계한다. 다시말해,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가장 직접적이고 밀접하게 작용하는 표현 방식이다. 단순히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회화는 우리의 감정이 이입될 수 있는 대상을 평면적으로 재현하는 예술 장르다. 그에 비해 연극, 음악, 문학 나아가 영화 등은 관객들의 오감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회화에 비해 상당히 입체적이다.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는 가장 일차적인 목적은 감정적 울림이다. 즉, 경험의 공유에서 오는 감정적 동요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회화는 입체적인 타 장르에 비해 감정적 울림이 적은 예술적 표현 수단인 셈이다.
그러나 회화가 평면적이고 기술적인 재현의 문제에서 벗어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달라졌다고 해서 입체적이고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쪽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감상이 어려워지는 쪽으로 달라진다는 말이다. 회화가 누구나 다 아는 무엇인가를 사진처럼 잘 그렸다던지 비록 낙서를 한 듯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든지 하면 그나마 보고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혀 그리고자 했던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정말 철저하게 대상의 재현에서 벗어나 있는 회화는 기분 나쁠 정도로 딴 세상 이야기가 된다. 이는 흡사 우리나라 국어 문제를 영어로 낸 시험지를 받아 든 기분과 비슷할 것 같다. 벽에 걸어 놓았으니 그림이라고 봐달라고 하는건데… 도대체 무엇을, 왜 봐야 하는 거야. 우리의 시각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감각임을 고려해 봤을 때, 이건 지나친 스트레스지.


해서 안상훈 작가는 본 전시의 제목을 ‘친절한 농담’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진지한 감상으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일단, 요즘 유행하는 아재 개그 한 두개 정도는 떠올리며 감상해 달라고.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아재 개그들을 떠올려 봐야할까. 과연 작가가 던지는 농담을 가볍게 받아 넘길 수 있을까. 진부, 아니 약간 뒤쳐진 듯 하면서도 촌철살인과 같은 위트 한마디. 어쩌면 안상훈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정확하게 말해 자신의 행위들이 우리의 삶에 늘 톡 쏘는 청량제 한마디를 던지는 그런 회화가 되었으면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상당히 진부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평면 회화를 통해서 말이다.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다 깬 경험이 있다면, 한번 쯤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게 되는 과정에서 어디가 현실인지 굉장히 혼란을 겪었던 경험이 그것인데, 나비 꿈을 꾸고 나서 내가 나비의 꿈 속인지 아니면 그 나비가 내 꿈 속에 나비인지를 너무나 진지하게 고민했던 그 분의 이야기를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분명히 이와같은 경험들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찰나의 경험이었다고 하더라도 분명 우리들의 기억에는 남아있다. 우리의 시각은 3차원의 공간밖에는 보질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적 경험과 그것의 축적인 기억을 통해 우리는 4차원을 상상할 수 있다. 다시말해, 그것이 단순히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정신적인 활동에서 3차원의 시각적 활동으로 고착화되는 순간의 경험에 대한 깨달음이었다면 우리는 이미 다른 차원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4차원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소리를 하면서까지 우리가 다른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물질적 감각을 넘어 물질과 정신, 그 둘이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공간에서 안상훈 작가는 우리에게 상당히 고차원적인 개그를 날리고 있는 지도 모를일이다.


과연 그 농담이 무엇일까. 그것은 안상훈 작가의 정신활동의 흔적들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이는 오직 회화, 그것도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그려놓은 회화를 통해서만 가능할 듯 하다. 작가는 우선, 정신활동을 운동에너지로 바꾼다. 즉,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그리는 행위로 변환시킨다. 그것도 아주 즉각적으로.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시간이 없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논리적으로 정리된 이야기는 왠만해서 농담이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에는 자신도 모르게 도식화되는 것들이 생긴다. 일명 시각적 언어라고 하는 품위있는 말도 있지만 시쳇말로 개그맨들이 그렇게 목숨을 건다는 ‘유행어’가 생겨난다. 이렇게 정신활동과 물질적 활동인 그리는 행위가 동시에 즉각적으로 진행되는 순간, 그의 유행어가 가득 담긴 농담이 시각적으로 보여진다는 건데…


엊그제 내가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이, 영화가 또는 큭큭거리면서 읽었던 만화가 보여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밑도 끝도 없이 우울했던 지난 주 선술집의 불빛에서 느꼈던 그것 같기도 하고… 여튼, 안상훈 작가 특유의 ‘친절한 농담’은 서사적으로 긴 이야기인 듯 하면서 시적으로 굉장히 짧고 감각적인 이야기인 듯 하다. 그에게 회화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의 개념, 아니 시공간이 동시에 작동해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매체인 듯 하다. 이건 뭐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를 넘어서는 도를 닦은거.. 맞지!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