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ting Off, 접촉경계혼란

2020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전시지원 선정작

일정, 2020년 5월 6일 - 5월 25일

장소, 토탈미술관

기획, 아터테인

후원, 문화관광부, 문화예술위원회

 

 

우리는 아직도 유목을 꿈꾸고 있는가.


예전에는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졌는 데...코로나로 인해서 인가.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점차 낯설면서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러한 심리적 혼돈들을 겪고 있다. 코로나가 퍼지기 바로 직전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 다음날부터 내가 어릴 적부터 살던 동네는 “돼지슈퍼. 스카이피자만 있나? 서울시 ‘기생충 팸투어’ 만든다”는 문구들이 신문기사에 오르내리면서 동네 사람들이 마치 기생충 기우 네 가족의 세트장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였다. 그 순간 갑자기 나의 삶은, 나의 기억들은 하나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과 같은 감정들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재개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이웃 사람들이 자고 일어나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을, 동네를 돈의 가치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공동체를 형성했던 이웃은 사라지고, 마치 외딴 섬에 표류된 생존자와 같이 고립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혼돈들은 어째서 생겨나는 것일까. <접촉경계혼란>전은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심리적인 혼돈들을 6명의 작가들의 시각이미지들과 게스탈트 심리학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게 하는 전시이다. 초월 심리학자인 캔 윌버는『아이 투 아이』라는 글에서 우리의 육체, 감성, 마음, 직관이 움직이는 법칙은 각자 속성이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이론을 빌어 설명하면, 게스탈트 심리학은 마음의 법칙을 읽는 하나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게스탈트 심리학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와 ‘접촉 경계’와 ‘유기체의 자기 조절능력’이라는 심리적인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이론이다. 무엇보다 게스탈트 이론은 ‘유기체의 자기 조절 능력’으로 ‘차이’와 ‘관계’를 통해 개인들이 스스로 자각하며 전체와 하나로 연결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동양의 고대 사유와는 어느 정도 닮은 모습을 띠고 있다.


‘접촉경계’는 관계가 형성되는 ‘나와 너’ 그리고 ‘나와 내가 아닌 것’이 만나 변화가 일어나는 곳,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만나는 장소이다. 접촉 경계에서는 에너지를 공유하며, 새로운 알아차림을 향해 움직인다.” Jeffrey D. Hamilton, 게스탈트 심리치료, 윤인·김효진·최우영·신성광 공역, 2018, p.107.
는 의미에서 보듯이 관계, 즉 접촉경계를 통해 개인의 알아차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을 의미한다. ‘접촉경계혼란’은 그러한 알아차림을 방해받는 것으로 ‘합류, 편향, 투사, 자의식, 내사, 반전’을 통해 생겨난다.


합류는 유기체가 자기 조절능력이 결여되고 타인에 의존하여 휩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영화촬영지 탐방자가 주인공이 살았던 영화 속의 장면과 실제 주민이 사는 슈퍼를 구분하지 않으며, 그 주변의 동네를 마치 영화 속의 세트의 한 장면으로 착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접촉경계혼란>전에서 김이수 작가의 ‘엥프라멘스(inframince)'의 개념으로 회화적으로 가시화하는 이미지들은 일시나마 그러한 합류적인 ‘착각’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러한 ‘합류’적인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영화촬영지인 돼지 슈퍼와 그 인근 지역을 영화 촬영지 탐방자들이 방문하기 이전과 영화촬영지 탐방자들이 방문한 이후에 변화된 주변의 지형을 염색된 테이프의 레이어를 통해 시각이미지를 통해 보여준다면 영화촬영지 탐방자들에게 그러한 합류적인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접촉경계혼란>전에서 부지현 작가의 집어등 불빛과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불빛의 색채들을 통해 편향된 심리적 개념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기생충 영화 촬영지 탐방자들이 돼지 슈퍼와 골목 계단은 동네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데 마치 기생충 영화 촬영지 탐방자들은 돼지 슈퍼와 골목 계단이 동네 전부라고 생각하여 영화 촬영지 동네의 실제 삶의 모습이 영화 촬영지 탐방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투사’의 개념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우리 ‘밖’에 있다고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의 탓이 아닌 다른 사람의 탓이라고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원호의 작업은 노숙자들이 임시 잠자리로 만든 박스를 구입하여 전시장에 커다란 집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원호 작가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집과 그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숙자들이 만든 임시 잠자리로 만든 박스를 통해 투사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집을 돈의 가치로 환원하는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이원호 작가에게 돈을 받고 언제든지 팔 수 있는 노숙자들의 박스 집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돈의 가치로 환원하여 매매하는 것은 돈을 주고 사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돈의 가치로 환원하여 팔고자 하는 자신 때문인 것이다.


자의식은 개체가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행동으로서, 외부로 향해야 할 주의를 내부로 향하게 함으로써 원활한 대인관계 접촉을 방해하게 된다. <접촉경계혼란>전은 외부로 향하는 모든 창과 통로들을 없애버린 건물들로 가득 메워진 거리를 소재로 하는 이창훈 작가의 ‘섬’ 시리즈를 통해 이러한 자의식의 개념을 재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밖으로 향하는 창을 모두 막는다는 것은 바깥과의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져 버린 통념과 삶의 가치는 우리의 정체성과 행동방식을 결정하는 하나의 구성요소가 되어 버린다. <접촉경계혼란>전은 자신의 사고의 기초를 만들어준 책을 세탁하고 다시 말리는 작업을 하는 이한솔 작가를 통해 우리의 익숙해져 버린 통념과 삶의 가치를 다시 재고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반전은 강압적 외부환경으로 인한 접촉 장애가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접촉경계혼란>전의 ‘반전’의 개념으로 최원석 작가가 10년의 세월에 걸쳐 연기군에서 세종 시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대로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담아낸 작업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떠나가고 다시 유입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생명들의 생성과 소멸들, 그리고 여기에도 혹은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생명들 내부에서 들려오는 심리적인 트라우마들.


이것은 세종 시만의 국한된 문제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돈의 가치로 환원시키고 신문지면을 통해 돈의 가치로 끊임없이 회자되게 함으로써 이원호가 설치한 노숙자들의 박스 집에서 살아가는 모습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접촉경계혼란>전은 우리의 현재 삶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환경의 문제, 집과 터전의 문제, 소통의 문제, 가치의 문제, 삶의 태도의 문제 등을 소재로 하는 6명의 작가들의 작업들을 게스탈트 심리학의 시선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들의 일상의 모습들과 그 속에 겪고 있는 심리적인 갈등들을 내밀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관용(DTC 아트센터 미술감독, 미술과 담론 대표)